디모데전서 1장 18절, 후메내오와 알렉산더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3년 10월 6일, 금요철야

  1.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2.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3.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전서 1:20 :: 성경

오늘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목회하는 동안에 믿음과 선한 양심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거짓 교리와 신화에 대하여 경고하고, 복음을 증거할 때에 건전한 교훈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10절)

사도 바울은 선한 싸움을 자신이 열심이 싸웠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딤후 4장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그러나 선한 싸움을 싸우지 않는 후메네오와 알렉산더의 이름을 제시하면서 나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선한 싸움을 어떻게 싸울 것인가?

 

  1.  믿음과 착한 양심으로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2.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믿음과 착한 양심은 마치 동전과 같은 것입니다. 동전이 제 구실을 하기 위하여 양면이 있는 것처럼 우리 신앙생활을 할 때에는 믿음과 착한 양심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그림자가 있는 것처럼 우리가 믿음으로 신앙생활 하는데 늘 그림자 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바로 착한 양심입니다.

  • 양심을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음행하다가 잡힌 여자

요한복음 8:9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2)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잡혀 제판을 받고 있을 때에

사도행전 23:1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3) 사도 바울이 벨릭스 총독 앞에서

사도행전 24:16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4) 양심은 율법과 같은 것입니다.

로마서 2: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5) 사도 바울이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얻고

로마서 9: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6) 양심에 화인을 맞으면 거짓말합니다.

디모데전서 4:2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7)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간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3: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요즘 우리 사회에서 정직하면 양심적으로 살면 성공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한 양심을 지키면서 살라고 하였습니다. 누구의 말을 들어야합니까? 불편하고 힘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야합니다. 왜하면 하나님 말씀만이 진리요 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서게 됩니다. 마지막 날을 대비하여 믿음과 선한 양심에 따라서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전도를 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믿음과 선한 양심을 지키면서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공회 앞에서 사도행전 23장 1절에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살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믿음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율법보다는 행함보다는 양심보다는 구원받는 것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해야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우리는 양심이나 행함은 버리라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서 살았다고

  1. 양심은 기본이고 믿음을 더하라

  2.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성도들은 오직 믿음 믿음만 강조합니다. 아닙니다. 기초에 선한 양심이 있어야합니다. 성전을 건축할 때에 지하실을 깊이 파고 그리고 1층부터 4층까지 올렸습니다. 지하실 기초와 같은 것이 착한 양심입니다. 우리가 입으로 주여 주여하면서 착한 양심이 없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입으로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면서 착한 양심을 버리고 거짓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딤전 3:8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집사님들이, 권사님들이, 장로님들이 일구이언하지 않고, 술에 인박이지 않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고, 깨끗한 양심을 가져야합니다. 그래야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되고, 목사가 될 수 있습니다.

예화> 순복음 총회신문 참조

어느 목사님이 독일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이 목사님을 안내하던 집사가 차를 몰면서 “목사님, 바로 저 집 대문 있잖아요. 언젠가 오밤 중에 차로 대문을 받아 부서졌는데 아무도 보지 않았기에 천만다행이었지요. 운전이 서툴렀던 때인데….” 작은 농촌의 마을을 지나면서 하는 말입니다. 마을이 수백 년 되었기 때문에 길이 꼬불꼬불해 운전하는 사람들에게는 힘든 길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 대문만 보면 늘 생각이 나지요. 주인이 어딜 갔는지 인적도 없고 해서 무사했죠. 참으로 ‘할렐루야’지요.” 목사님은 이 이야기를 듣고 꺼림직한 마음이 들어 “집사님, 안 들킨 것이 어째서 할렐루야입니까?”하고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었다고 합니다. 남의 집 대문을 부수어 놓고 들키지 않은 것이 ‘할렐루야’라니 신앙양심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습니다. 또 목사님들 중에는 교통법규를 어겨 교통경찰에게 딱지를 떼게 되었을 때 자기 신분이 목사라는 것을 밝히고 눈감아 달라고 불의한 부탁을 하는 일도 많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자기의 거짓된 양심을 가리는 커튼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1. 믿음과 선한 양심을 버린 사람들의 예화

  2.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는 에베소 초대 교회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믿음에 파선하여 사단에게 넘겨준 사람들입니다.

  • 이유

1)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는 참된 교리를 거부하고 거짓 교리를 따른 사람들입니다.

2) 나중에 후메내오는 또 다른 거짓 선생인 빌레도와 함께 언급됩니다

(딤후 2: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악성 종양을 퍼뜨리는 자입니다. 마치 코로나 19을 전파하는 사이비 이단 신천지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3) 금속 세공인 알렉산더라는 바울의 반대자

(디모데후서 4장 14.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오늘 본문의 알렉산더와 같은 인물이라고도 하고 그렇지 않다고도 합니다.

4)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는 신성모독한 사람입니다. (딤전 1:18-20)

5) 그들의 주장은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바울의 교리는 거짓교리이다. 바울이 부패했다. 생명을 멸망시키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 파선

사도 바울은 19절에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파선했다고 하였습니다.

버림받음으로 번역된 것은 “배 밖으로 던져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믿음에서 해양용어를 사용하여 죄의 세상으로 던지진 존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양심도 없고 믿음도 없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선한양심과 믿음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8: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앨버트 반스(Albert Barnes) “사람들은 죄에 빠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불신자가 됩니다. 사람들은 편하게 살고 죄를 지으므로 자신의 쾌락을 얻기 위하여 신앙을 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선한 양심과 믿음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잘 읽어보면 사도 바울은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는 구원을 아직 잃지 않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록 잘못된 교리와 이단에 들어가있지만 지금이라도 구원함을 받기 위하여 그곳에서 나와야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 바울이 사람을 사탄에게 넘겨 주었다는 표현은

예수님을 믿으면서 부도덕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육체를 멸하기 전에,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고전 5:5) 구원을 받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모독하지 말 것을 가르침”(디모데전서 1:20)

사도 바울 자신도 한때는 예수님을 핍박하는 자였습니다. (디모데전서 1:13) 그러나 지금은 예수님을 찬양하고 예수님의 사역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에 대한 바울의 소망은 그들도 훼방하지 아니하고 주의 은혜와 긍휼을 알게 되기를 원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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