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디모데전서는 목회서신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목회를 이렇게 하라고 말씀한 내용입니다. 자신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간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린 사역자 디모데를 업신 여기는 성도들을 향하여 디모데에게 다시 한번 용기를 주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함으로 자신의 간증이 이야기를 함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1)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신다. 예수님이 나를 능하게 하셨습니다. 이에게 대하여 감사합니다.
2) 자신은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요였을 때에 자신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어떠한 비방자입니까? 박해자입니까? 폭행자입니까?
사도행전 8장 3절 “사도 바울은 교회를 전멸할 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사도행전 9장 1절 “살기가 등등한 자”
사도행전 9장 26절 자신의 신념으로 외국의 성까지 가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자입니다.
사도행전 22장 4절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함이라.
사도행전 22장 19절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사도행전 26장 9절 11절에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
…. 모든 회당에서 여러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게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
몰라서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으로 하였습니다. 그는 율법학자입니다. 무식하여 핍박한 것이 아니라 알고 핍박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알고 행하는 것이 잘못 알았던 것입니다. 인간적인 지식으로 아는 것입니다.
긍휼을 입은 자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은혜를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배은망덕하고 목이 곧은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회개할 때마다 매번 용서하셨고 끝까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구속의 역사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어떠하신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인들을 박해하며 교회를 무너뜨리던 죄인 중의 괴수 바울을 선택하셔서 가장 유력한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구원하시고 선택하셨는지 알았습니다.
바울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죄인 중의 괴수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긍휼을 여러 세대에 나타내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악한 죄인들도 바울로 인해 하나님의 긍휼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긍휼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구원 받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고 다른 사람에게 엄격하다면 그것은 모순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는 마땅히 하나님의 긍휼을 나타내야 합니다.
라구아디아는 뉴욕 시민들이 존경했던 시장의 이름입니다. 라구아디아는 시장이 되기 전에는 판사였습니다. 그가 뉴욕 시민들에게 명판사로 알려지게 된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 어느 날, 라구아디아 판사는 재판장에서 한 노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노인은 추운 겨울에 가족들 없이 외롭게 사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돈도 없고 너무나 배고픈 나머지 다른 사람의 지갑에서 20달러를 훔친 죄로 체포되어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판결을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라구아디아 판사는 그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노인장,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그 노인은 라구아디아 판사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말했습니다. “판사님, 저에게 한번만 긍휼을 베풀어주십시오.”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습니다. 조용히 노인을 굽어보던 라구아디아 판사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맞습니다. 노인장에게는 참으로 긍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노인이 잘못한 그 20달러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마침 제게 10달러가 있군요. 제가 이 10달러를 노인장을 대신해서 변상하겠습니다. 노인장을 춥고 배고프도록 버려 둔 데에는 저의 책임도 상당히 크기 때문입니다. 10달러가 더 필요합니다. 이 사회와 여러분들에게도 공동 책임이 있습니다. 이 노인을 위해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기부를 좀 하시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라구아디아 재판관의 명 판결을 보고 감동하여 자발적으로 기부를 해서 47달러 50센트가 모아졌습니다. 그 후 뉴욕 시민들은 라구아디아 판사를 긍휼이 많은 판사라고 인정하였고 그는 뉴욕 시장이 되어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세 번 연임을 했습니다.
우리는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기억하며 긍휼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였습니다. 괴수라는 말은 첫번째 죄인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가장 악한 죄를 지은 자라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자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말을 사도 바울이 하였습니다. 은혜가 더하기 위하여 죄를 더 많이 지어야할까요? 그런 말이 아닙니다. 모르고 사도 바울이 한 죄를 생각하니 정말 하나님의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을 무척이나 아프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도저히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존재이만 하나님이 자신을 사용하기 위하여 은혜를 주시고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죄를 더 지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는 입술로만 하는 회개가 아닙니다. 정말 마음으로 회개해야합니다.
저는 매 주일 아침 예배드리기 전에 나의 죄를 회개합니다. 한 주간 그렇게 많이 죄를 짖지 아니 하여도 마음을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산에 올라오는 자는 마음이 청결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정결 마음을 달라고 회개합니다.
긍휼을 입은 까닭은
1) 12절에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2) 나를 능하게 하셨습니다.
3) 오래 참아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