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3장 11절 새벽기도회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4년 3월 20일
  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2.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3.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4.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5.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
  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여러분들은 달란트 비유를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이 한 달란트를 가지고 온 자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말씀하니다. 게으름은 악과 같은 것입니다. 게으름은 가정과 사회와 교회에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어떻게 게으름을 이길 수 있습니까?
역대하 29장 11절 “내 아들들아 이제는 게으리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미 너희를 택하사 그 앞에 서서 수종들어 그를 섬기며 분향하게 하셨느니라. ”
게으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소명에 대하여 집중하지 않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를 부르신 가장 큰 목적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에 게으르지 말아야하니다. 우리 사모가 정서남 권사님이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걱정하였습니다. 그분 주일날 거의 빠지 않습니다. 왕십리에서 이곳까지 오시는 분입니다. 남편 유명균성도가 태어주는데 마라톤을 하는지 어찌나 막히는지 겨우 11시가 다 되어서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게으름을 이기는 것은 바로 마음의 결심입니다. 그냥 일어나는 것입니다.
새벽기도회 시간에 춥고 나오기가 싫습니다. 우리 성도들 대부분이 나오지 않습니다. 성산동에 사시는 성도님들이 나오셔야하는데 나오지 않습니다. 따뜻한 이불이 그리워지지 때문입니다. 게으르면 마음의 죄책이 다가오고 그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지는 것입니다.
헬라어로 게으름의 단어가 아케이디아라고 합니다. 아는 부정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케이디아는 돌보다 (키도스)라는 단어가 합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어떤 일에 대하여 돌보지 않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철하자이며 하모니카 발명가이며, 최고의 정치가이며 만화가인 벤자민 프랭클린이 있습니다. 그는 피뢰침을 발견하였고, 펜실베니아 주지사를 네번이나 했으며 우편 배달업무를 시작하였고 시청에 청소과를 처음으로 조직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참으로 부지런하게 살았습니다. 기독교 국가에서 게으른 사람들은 사탄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일을 만드는 사람과 같기 때문입니다.
  1. 예배에 게으르지 않아야합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에서 가장 기본이 예배입니다.
중국영화에서 보면 이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중국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gōngfu는 궁푸라고 읽어야 한다. 하지만 외래어 표기 용례나 표준어 사전에 등록된 단어는 쿵후다. 아무래도 관용적으로 많이 쓰인 것이라 이렇게 등록된 듯 싶다. 영어권에서 자주 통용되는 Kung-fu의 영향으로 쿵푸라고 읽는 사람도 많은 편.
중국 외 외국에서는 중국권법을 가리키는 단어로 쓰인다. 하지만 쿵후는 원래 공부(功夫)를 뜻하는 단어다. 한국에서 말하는 공부(工夫)와는 한자가 다르다. 工夫란 분야를 막론하고 기술과 지식을 쌓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뜻하며, 功夫란 그렇게 해서 쌓은 실력이나 조예를 말한다. 무엇부터 배우는가 바로 기초훈련입니다. 체력훈련이 바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신학을 공부하는데 영어권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필리핀에 있는 미국 선교사가 세운 APTS (오순절교단의 신학교)입니다. 그런데 1학기에도 영어, 2학기에도 영어, 3학기에도 영어, 계속 영어만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가려고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음을 돌리고 다시 영어공부하고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영어가 안들리니까? 교수님의 강의를 알아 들을 수 가 없는 것입니다. 기본이 영어입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이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가 바르게 되지 않고 다른 것 어떤 것도 이루워지지 않습니다. 예배에 충실한 사람은 모든 것에서 충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있고, 똑똑하고 게으른 사람이 있습니다.
멍청하면서 부지런한 사람이 있고, 멍청하면서 게으른 사람이 있습니다.
가장 골치 아픈 지도자가 있다면 게으르면서 멍청한 지도자 일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일만 만는 지도자입니다. 나는 태성부터는 게으른 사람입니다. 나는 태생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라고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들은 부지런하도록 노력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지혜를 얻어 하나님의 지도자로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정서남 권사님의 남편이 자신의 친구가 독일에서 있다가 남해안에 놀러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혈압약을 한국에 들어오면 먹지 않다가 쓰러젔다고하니다. 그래서 코피가 나오게 되었고 가까운 병에 가서 치료를 받고 놀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하였습니다. 약을 게으르게 먹어도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약을 먹으면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사무엘상 3.1-4)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고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하나님은 동일하게 은혜를 주시는데 우리 사람들이 게을러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지 않고, 기도하지 않아서 이상이 희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나의 기도를 보고 술취했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전쟁에 나가면 성전에서 기도해야하는데 엘리제사장은 앉아서 있다가 비둔하여 죽게 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6-15절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게으른 형제들을 권면합니다. 바울이 게으름을 가벼운 결점으로 치부하지 않았음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교회는 일하는 책임을 회피하는 자들에게서 떠나라는 요구를 받았으며, 이는 신도들이 교회 모임을 가질 때 이들을 배제시키라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게으름은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지우기 때문에 한 집단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살전 4:11)
일만 만들기만 하는 자들의 헬라어 원문 ‘periergazomai[페리에르가조마이]’는 남들 문제에 개입하여 쓸데없이 참견하는 것을 가리킨다.
디모데전서 5장 13절에서 교회의 도움을 받는 젊은 과부들을 향해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라고 말할 때 드러난다. 또한 데살로니가의 게으른 자들이 다른 사람의 일을 방해하며 논쟁을 일삼았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게으름은 반드시 문제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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