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을 취하라는 좋은 것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평생동안 선택하면서 살아갑니다. 아내를 선택하고, 종교를 선택하고, 작은 것 음식과 옷을 선택하면서 살아갑니다. 영적인 선택도 있습니다. 성령을 선택할 것인가? 악한 영을 선택할 것인가입니다. 성경은 범사에 좋은 것을 선택하라고 하였습니다. 반면에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 중에 시편 1편의 말씀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는 말씀입니다.
시편 1편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편 1:1-2).
악인들의 꾀를 따른다, 죄인들의 길에 서다,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는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자신이 정말 예수님의 수제자인 것처럼 말하고 그리고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막상 죄인들 앞에서 서 있을 때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죄인들 가운데 앉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주님을 저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타락하게 되는 과정은 이러합니다. 음난을 술을 멀리서 바라보고 호기심을 가지고 그 곳을 응시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소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듯이 그리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선설이 아니라 성악설을 믿고 있기 때문에 아담이 죄를 지으므로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의 길을 따라서 갈아갑니다. 쇠가 지남철을 따라 끌려 올라가듯이 자연스럽게 죄의 호기심을 발동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에 빠지는 순서입니다. 무슨 일이든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는 사실을 잘 아실 것입니다. 한 번 두 번 허용하다 보면 점점 심하게 오염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씩 의심하고 조금씩 흘려 듣고 조금씩 순종하지 않고 조금씩 타협하고 조금씩 정당화하면서 조금씩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다가 어느 순간 하나님을 저버리게 됩니다. 설연휴를 지나고 이제 평상시 처럼 일상의 생활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설 연휴 동안에 나도 모르게 교회를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에게 무엇인가 갔다 드려야하는데 그러지 못하여 미안하여 주일을 성수하지 못하고, 주일성수 못하다보니 새벽기도회도 나오지 못하고 그러는 김에 수요예배까지 빠지게 됩니다. 그럴 필요없습니다.
청년 요셉은 어떻게 해서 끈질긴 보디발 아내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승리할 수 있었을까요?
성경은 그 비결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창세기 39:10).
요셉의 승리의 비결은 여인의 요구를 듣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함께 있지도 아니한 것이었습니다. 정면승부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멀리할 수 있으면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소한 것 하나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면 단호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에베소서 4:29).
우리 마음이 악해지는 것도 조금씩, 반대로 선해지는 것도 조금씩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하고 작은 일이라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조금씩이라도 취할 것을 취하고 버릴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이 보전되기를 원하노라”(데살로니가전서 5:23).
성령을 소멸하지 말아야 합니다. (Quench not the Spirit.)
퀴웬치라는 말은 끄다, 소멸이라는 말은 영어로 직역하면 성령을 끄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정을 억누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억누르지 말라, Quench는 주로 기름을 적고 많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기름이 없게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무엘상 3장 4잘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교회나 성도들의 마음속의 영도 소멸되지 않도록 계속적으로 기름을 공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매일 드리는 예배 새벽기도회를 통하여 우리가 성령을 불을 태어야합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 35절에 35.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36.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혼인잔치에 오실 때에 우리가 기름을 준비하여 주님이 오실 때에 문을 곧 열어주고 불을 밣히고 주님을 모시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불을 끄지 않는 것은 성경을 소멸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고 성령을 기름을 충만하게 채움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엡5:18). 세상에 취하지 않고 성령에 취하여 어두운 세상의 불로서 밝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