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3장 9절 새벽기도회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4년 1월 24일
  1.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2.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갈 수 있게 하시오며
  4.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5.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2.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
데살로니가 교회에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기쁨으로 기뻐하니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가지 못했습니다. 여러가지 사정이 있습니다. 1) 유대인의 핍박으로 인하여 가지 못했습니다. 2) 자신의 질병으로 가지 못했습니다. 3) 사도 바울의 일정으로 예루살렘으로 그리고 로마로 가기 위한 준비로 가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째든 자신은 가지 못하지만 디모데를 보냈습니다. 디모데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배달 사고도 나지 않고 여러가지 믿을만한 영적인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자신은 약 21일동안 주일날만 치면 3번 예배를 드리고 데살로니가 교회를 나왔는데 디모데가 좋은 소식을 전하여 주는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이 있다고 하는 소식입니다. 그리고 아가야지방에 모든 교회에 본이 되는 교회로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아름다운 소식인지 기쁨을 표현할 수 없는 본문 9절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가 아프면 내가 아프고, 사랑하는 성도가 물질적으로 복을 받으면 제가 받은 기쁨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행복하고 기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전도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 옥토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길짝밭같이 복음이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시밭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복음은 받아들이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포기하는 성도들입니다. 그러나 옥토와 같은 밭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옥토와 같은 밭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것입니다. 기쁨입니다.
  1.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2.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10절에 사도 바울은 주야로 심히 간구한다고 하였습니다. 주의 종이 주야로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이유는 그들의 영혼이 잘되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벽에 성도들의 가정을 위하여 한 가정 한 가정 기도합니다. 그럼 그의 자녀들까지 축복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가정을 위하여 축복합니다. 그것이 주의 종의 할입니다. 제가 성도들에게 물질을 제공하겠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축복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럼 성도들이 잘되어 교회도 주의 종도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갈 수 있게 하시오며
  2.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3.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사도 바울은 데살로가로 정말 가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님께서 우리 길을 너희에게 갈 수 있게 하시오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 못하여도 너희를 사랑함과 너희도 피차간에 사랑을 더욱 넘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 거룩하고 흠없이 살아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랑은 마치 예수님과 같은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한 것 같이 어머니가 딸을 사랑한 것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낳은 데살로니가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잉태하는 것은 위대한 것이니다. 그리고 그속에 힘있고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망나이 딸 철부지 딸 자기만 아는 딸이 결혼하여 시집가서 자녀를 낳으면 완전히 여자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철인이되고 강인한 엄마가 되는 것을 볼 수있습니다. 우리 여동생 유리가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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