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복음으로 낳았습니다. 바울은 저희들의 영적인 부모입니다. 목숨까지 바치는 어머니처럼, 자녀를 돌보는 유모처럼, 때로는 엄히 꾸중하는 아버지처럼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하나님께서 부르신 뜻에 합당하게 살도록 가르치고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 결과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떠났어도 그리스도를 본받는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함으로 바울을 기쁘게 했습니다. 1장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을 칭찬한 바울은 이제 그들에게 복음 자체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변호하며 권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대적들은 바울이 자기 주머니를 채우려는 욕심으로 복음을 전했다고 중상모략을 해서, 선교 사역에 관한 그의 동기를 의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일은 바울이 전한 복음 자체를 파괴하는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난동을 부리는 유대인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데살로니가를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더라도 자신의 사역이 결코 실패가 아니었음을 성도들이 알아주리라고 믿었습니다.
첫째로, 바울은 고난에 굴복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본문 1-2절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자신의 사역이 헛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데살로니가에서의 사역은 성공이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목회의 성공이 그냥 된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당한 고난과 능욕은 귀신들려 점치는 여종을 고쳤다가 매 맞고 옥에 갇혔다가 찬송과 기도로 옥문을 열고 간수의 가족들을 구원했던 그 사건을 말합니다(행 16:16-40).
바울이 권면을 하면서 빌립보에서 받은 고난과 능욕을 먼저 얘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신의 사역이 사리사욕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만약에 사리사욕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안 하고 말지 누가 이렇게 고생스러운 짓을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에 이어 데살로니가에서도 계속되는 핍박, 고난(苦難)과 능욕(陵辱)을 당했지만 굴복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람들은 고난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바울도 사람인데 고난을 좋아했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고난을 피하지 않고 극복했습니다. 바울이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요? 본문을 보면 ‘하나님을 힘입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극복하는 힘과 능력을 공급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주의 일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하나님을 힘입지 않고는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없고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싸움과 환난을 피하여 쉽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나 쉬운 대상만을 찾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어떤 싸움과 환난이 닥치더라도 기회가 주어지면 주저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내 힘으로 하려고 하면 고난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바울이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은 그가 슈퍼맨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주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주님 안에 거할 때 고난을 이길 수 있고, 결국에는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키워드 하나님을 힘입어 살자
사도바울은 사도행전 14장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행 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메시지 성경은 이 구절을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입니다(행 17:28).”로 번역합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 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물고기가 아무리 멀리 헤엄쳐 나가도 여전히 물속이듯이, 우리 인생은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 안에서입니다.
우리교회 주변에 살고 있는 고양이 4마리는 2마리는 자신의 마음대로 살아가는 고양이가 있고, 2마리는 밖에 나가지 않고 우리 사모가 주는 음식만 먹고 사는 고양이가 있습니다.
아담이 짐승을 지나갈 때마 이름을 지어준 것처럼 우리 사모가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삼색이, 등검이, 코털, 누렁이
사무엘상 30장
1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흘 만에 시글락에 이른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네겝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2 거기서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4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5 (다윗이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이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사로 잡혔더라) 6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다윗이 동족과의 싸움을 피하게 되어 휘파람을 불며 거주지인 시글락으로 돌아 왔습니다. 사흘 만에 돌아온 시글락에 그러나 그들을 반기는 것은 가족들이 아니라 불타 폐허가 된 진지 뿐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었건 젊었건 간에 여인들이란 모두다 적들에게 잡혀간 상태였습니다. 다윗이 블레셋에 거주 한 것은 결국 그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다윗이 위험에서 벗어난 것은 자신의 처세술이나 정치적 역량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해 주셨던 것입니다. 다윗은 위기 뒤에 또 다른 커다란 위기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산을 넘었으나 또 다른 큰 산이 앞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외부적 위험이 아니라 내부적 위험한 지경에 처했습니다. 다윗을 믿고 따랐던 부하들이 다윗을 돌로 치려했을 정도로 위기가 심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힘 입고 힘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