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6장 5절 #선을 넘는 자들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5년 11월
- 序
우리 교회에서 함께 살고 있는 길양이(축복이)는 작년 겨울 우리 교회 담벼락에서 태어나서 우리 교회 식구가 되었다. 죽을 수 밖에 존재였지만 살아났다고 하여 축복이다. 고양이들은 굉장히 경계가 심하고 자신의 영역을 쉽게 벗어나지 않는 동물이다. 스스로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선 밖으로는 잘 나가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다. 우리 축복이 역시 성전 정문 앞에서 밖으로 쉽게 나가지 않고 다른 길양이들 역시 우리 교회 정문으로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데 하루는 축복이가 우리교회에서 대원아파트 쪽으로 경계선을 벗어나게 되었는데 다른 길양이의 공격을 받아 무사히 우리 교회 정문으로 들어온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외할머니 댁에서의 풍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술래잡기하며 뛰놀던 시골 동내의 모습들, 외 할머니가 부르는 순간 쪼르르 달려가 품에 안겨 집에 들어가 밥을 먹으려는 순간 대청마루에서 제 동생과 저를 수건으로 먼지를 떠는 기억이 생각난다. 대청마루가 나의 경계선입니다. 옷을 벗기고 따뜻한 물로 씻기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먹는 저녁 식사는 먹을 것이 없어 고구마를 먹지만 세상에 어떤 식사도 비교되지 않는다.
- 유대인의 경계선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도 자신들만 선민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예수님 당시에도 마찮가지이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출 19장 5-6).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기 위하여 유대인의 경계선을 그었다.
유대인의 경계선은 먹지 말아야 할 것과 먹어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카슈루트(Kashrut)’라는 제도가 있다. 유대인들은 돼지고기, 토끼고기, 말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에 되새김질하지 않고 발굽이 갈라지지 않는 동물들은 부정하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해산물 중에서도 새우, 조개류, 갑각류와 메기, 장어, 오징어 등은 먹지 말아야 한다. 유대인들이 햄버거 중에서도 치즈 버거를 먹지 않는다.
안식일(샤밧)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지키는 가장 중요한 날이기 때문에 ‘멜라카'(מְלָאכָה, melachah)라고 불리는 ‘일’ 또는 ‘노동’으로 간주되는 행위는 철저히 금지한다. 안식일에 불을 피우거나 불을 끄는 행위를 금지한다. 전기를 켜고 끄는 행위도 이에 포함된다. 냉장고 문을 열 때 램프가 켜지는 것도 금지한다. 안식일에 비가 와도 우산을 펴는 것을 금지한다. 알파벳 두 자 이상 쓰는 행위도 있다.
- 경계선을 허무시는 예수님
1) 예수님은 음식의 경계선을 허무셨다.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다고 하시면서 (마가복음 7:15). 외부의 음식이나 전통적인 정결 규례가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 더러움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하였다. 특별히 신약 베드로의 환상(사도행전 10장)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더욱 선명하게 하셨다. (사도행전 15장)
2) 예수님은 안식일의 전통까지 허무셨다.
제자들이 밀밭에서 이삭을 잘라먹고 비벼서 먹는 행위를 비난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예수님은 다윗의 예시를 통하여 반박하셨다, (누가복음 6:3-4, 마가복음 2:25-26, 마태복음 12:3-4) 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사람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면서 진설병을 먹는 일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리고 안식일의 주인은 바로 예수님이라고 선포하셨다. (누가복음 6:5, 마가복음 2:27-28, 마태복음 12:8)
누가복음 6:5: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마가복음 2: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손 마른 자를 안식일에 고쳐주셨을 때에도 치료의 행위가 노동의 행위보다 더 옳다고 하시면서 안식일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셨다. 삶으로 안식일을 거룩한 주일로 바꾸셨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안식일이 아닌 주일날 부활하심으로 주님의 날 (주일)로 바꾸셨다,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 (안식 후 첫날 요한복음 20장 19절) 초대교회 성도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안식 후 첫날에 모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 주일예배이다. (사도행전 20:7)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마가복음 2:27-28)
3) 선민이라는 자부심을 허무셨다.
이스라엘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사마리아인들을 철저히 이방인처럼 구분하고 경계선을 둔다. 이는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는 오랜 전통은 앗수르 민족의 침략으로 혼열이 되었기 때문이다. 종교적으로는 예루살렘이 아닌 그리심산에 성전을 짓고 타락한 우상을 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수인 복음을 증거하고 남편에 대한 삶을 꿰뚤어 보시고 그녀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셨다. 예수님은 민족, 종교, 사회적 편견을 허무시고 모두를 사랑하셨댜.
- 유대인의 경계를 허물고 이방인에게 (사도 바울)
에베소서 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사도행전 28장 15.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압비오 광장(Forum of Appius)과 트레이스 타베르네(Three Taverns)는 사도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어 갈 때, 로마에 있던 성도들이 바울의 소식을 듣고 그를 영접하기 위해 나왔던 지점이다. 로마 황제나 고위 관리들이 지나갈 때에도 환영 의식이 거행되던 장소이기도하다.
사도행전 28장 15절에서 로마의 성도들이 바울을 “맞으러” 나왔다는 표현에 사용된 헬라어 ‘아판테신(ἀπάντησιν)’은, 어떤 도시의 대표단이 왕이나 장군과 같은 중요한 인물을 성대하게 맞이할 때 쓰는 단어이다. 로마 황제가 방문할 때 시민들이 나와 환영하는 것처럼, 로마 교회 성도들이 사도 바울을 극진히 환영했는지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었다고 하였다. 비록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입성하지만 성도들의 따뜻한 마음 때문에 힘을 얻었다. 전도 여행을 하면서 당한 고난과 핍박, 또한 입성하기 전에 사도행전 27장 20절을 보면, 배가 풍랑으로 심하게 흔들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진’ 극한 상황 가운데 사도행전 27장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주시는 말씀을 믿고 마침내 로마로 들어오게 되었다.
- 조선의 불교를 기독교로
언더우드가 한국에 복음을 들고 들어올 때에 편지가 생각난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이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앉히셨습니다. …..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의심부터 내고, 화부터 냅니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이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 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지금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한국에 있다면 얼마나 놀랄까하는 생각이 듭다.
개신교가 세운 고등학교 180개, 천주교 38개, 불교 15개이다. 개신교 계열 학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 압도적이다. 대학교 또한 138개로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숭실대학교, 한남대학교, 계명대학교 등), 가톨릭대학교, 서강대학교, 불교 대학교는 동국대학교 등 비교적 소수이다. 이 처럼 한국 기독교는 대한민국에 엉청난 일들을 하였습니다. 처음 국회를 시작할 때에 기도로 시작한 국회이다.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역사하는 모습을 만약에 초기 복음을 증거한 선교사님들이 보면 얼마나 놀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교회(개신교)는 한때 1,200만 명을 헤아리며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지만, 현재 850만 명 수준으로 감소하는 추세이고, 천주교는 400만 명대에서 600만 명대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경계를 넘는 일을 쉽지 않는 일이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타 민족에 대한 경계를 허물지 않고 있다. 교회 역시 자신들의 율법주의와 아집에 갖혀서 경계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이건희전 회장의 신경영선언이 필요하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 했습니다.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켐핀스키호텔에서의 선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