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5장 17절 믿음을 보시고

누가복음 5장 17절-26절 믿음을 보시고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0년 5월 24일

 

17.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18.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 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22.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2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25.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26.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하니라

 

사모와 함께 인천 가는 길이였습니다. 차안에서 극동방송을 들었습니다. 신앙생활은 훈련이라고 하시는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도 야구를 좋아하지만 이 목사님도 야구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사모가 말하였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야구를 들었습니다. 충암고등학교, 광주일고, 북일고, 대전고, 역전의 명수 군상상고가 떠오릅니다. 저희집 앞에 운동장이라서 선화초등학교 앞에서 종종 야구를 하였습니다. 투수를 하였습니다. 커브를 종종 더지기도하였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중고등부 시절에는 예배가 끝나고 난뒤에 중부장로교회에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야구를 한 기억이 있습니다. 높게 들어오는 곳을 잘 받아치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몸이 굳어져 도저히 야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야구선수 출신의 투수에게 야구공을 잡는 방법 그리고 손을 비틀어서 던지는 방법을 배웠지만 커브가 잘 들어가게 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였는지 모릅니다.

 

신앙생활도 훈련입니다. 설교를 많이 들으면 뭐합니까? 성경을 많이 알면 무엇합니까? 그 말씀을 듣고 믿음을 보여주어야하는데 믿음이 전혀 없는 서기관과 바리세인처럼 살면 뭐합니까?

 

오늘은 조금 매운 음식을 먹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교회의 매뉴는 떨래기입니다. 이 음식은 아주 조금 다른 음식입니다. 색다른 음식을 먹고 힘을 얻는 것처럼 오늘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들이 시험에 드는 것이 아니라 힘을 얻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사모님과 함께 살면서 감사함으로 음식을 먹습니다. 때로 짤때도 그리고 매울때도 그리고 싱거울때도 있습니다. 평생 수백번 수만번의 음식을 체려주는데 감사함으로 먹으면 탈이 안생깁니다. 그러나 불평하고 먹은면 음식에 탈이 생기고 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설교말씀도 감사함으로 받으면 영적인 양식이 되는 것이지만 불평하고 받으면 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설교하도록하겠습니다.

사람들이 立錐의 餘地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아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방하기 위하여 꼬트리를 잡기 위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4명의 중풍병자 친구들은 예수님에게 자신의 친구를 대리고 가서 치료받기 위하여 대리고 온 것입니다. 그리고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을 보고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뜯고 그리고 예수님에게 자신의 친구 중풍병자를 내려놓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붕을 뜯을 때에 우성우성하였을 것입니다. 중풍병자를 내려올 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놀랐을 것입니다. 저 인간들이 지붕을 물어주려나 저 인간들이 왜 이렇게 우리를 방해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받았다고 하셨고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로부터 참람한 말을 듣었지만 그 중풍병자를 고처주셨고 그리고 그를 낳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광경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리고 심히 무서워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의 가정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위하여서는 믿음을 보여주어야합니다.

 

 

1. 바리새인과 율법교사처럼 앉있으면 안됩니다.

17.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두 종류의 형태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7절에 보면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의 설교 내용입니다.

사도행전 7장 54절에 보면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둘째 설교는 스데반의 설교입니다.

본문은 한자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차이에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땅을 치고 회개하지만 그 설교를 듣고 이를 갈고 스데반을 돌로 처 죽이는 일을 하였습니다.

 

설교의 내용은 예수님에 대한 내용이고 그 내용의 중심은 너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도 그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17절에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제일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아주 좋은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을 어떻게 하든지 넘어뜨리기 위하여 앉은 자리입니다. 예수님을 책잡기 위하여 모인 자리입니다. 그러나 4명의 중풍병자 친구들은 앞자리도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앞자리에 가지 못하였습니다. 그 중풍병자를 침상채 메고 왔습니다. 여러분 장래식장에서 관을 들어보시 분이 있습니까? 저는 많이 들어보았습니다. 정말 무겁습니다. 6명이 드는데 힘들게 낑낑 거리면서 산길을 가고 무덤까지 매고 가면 정말 죽을 맞입니다. 그런데 이 4명의 친구는 침상 + 살아있는 중풍병자를 지붕위로 그리고 그 지붕을 뜯어버렸습니다. 그것도 사람과 침상을 내릴 정도로 힘들은 과정을 격으면서 예수님에게 내려놓았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주님의 기적이 일어나지 그냥 앞에서 시비걸기 위하여 온 바리세인과 율법사들에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용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모인 제일 앞자리, 마치 신도림역에서 전탈을 타기 위하여 모여있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전철을 탑니다. 그리고 움직일수 없는 상태 가운데 가장 편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입니다. 그 마음속에 예수님을 믿는 마음이 없으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2. 4명의 중풍병자처럼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신앙생활은 장애물의 연속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다 시온의 대로처럼 신앙생활하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이정철목사님께서 목요일날 우리교회 와서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목사님 저희 교회에 4월 첫주 헌금이 6만원 나왔습니다. 정말 죽을 맛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5월에는 회복되어 다시 선교헌금을 보낼 수 있도록 하나님께 축복하셨습니다 하고 간증하시면서 인천 검단으로 이사오신 권사님이 이곳 저곳 교회를 방문하시고 교회를 정하려고 하였는데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복받으라만 말씀하셔서 속상하다고 말씀하시면 코로나 가운데서도 살아있는 복음을 증거하는 목사님들이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교회가 어려운 가운데 부흥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신앙생활은 장애물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아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졸업을 못할 것같은 상황이 됩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훈련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들과 한번 비교하게 되었습니다. 제일 공부할 때에 상황과 비교하게 되었습니다.

아들: 하나님이 있고, 부모님의 능력도 있고, 기도하는 성도들

아버지: 하나님있고, 도와줄수 있는 형편이 안되는 부모님, 기도하는 성도들 없음

공부하는 동안 근심 걱정이 많이 있었음, 물질적인 문제, 그리고 영어에 대한 부족, 그리고 학점에 대한 두려움이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나니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졸업한 김종국 목사님 학교에서 가장 공부잘한 윤목사님을 도울 수 있는 형편이 되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내 능력으로 안되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뚫고 가는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이 는 하나님 밖에 없다는 믿음으로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마치 지붕을 뚫는 심정으로 신앙생활해야합니다.

 

4명의 친구들이 믿었던 것은 17절에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있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24절에 예수님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지붕 뚫고 중풍병자를 내려 보내면 고처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침상을 내려보내면 우리를 칭찬하시고 고처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분임을 믿어야합니다.

 

여러분 이 4명의 친구들처럼 우리가 믿고 나가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이 믿는 것과 내가 믿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들 우리 교회 많은 성도들이 이러한 믿음을 소유하는 성도들이 될 때에 이러한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온갖 좋은 은사가 있지만 그것을 믿고 구하고 그리고 찾아야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7:32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3. 믿음을 보시고 (20절)

 

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대부분의 성도들이 믿는 단계에 끝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믿음은 보여주는 단계까지 가야하는 것입니다. 역경을 뚫고 지붕을 뚫고 나는 믿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다 이렇게 할 때에 기적이 체험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도 믿습니다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내 아들 독자 이삭을 드리라고 할 때에 그는 행동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리아산으로 아들을 대리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들 이삭을 드리게 될 때에 됐다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22장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4명의 중풍병자에게도 아브라함에 하셨듯이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본문 20절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많은 성도들이 타령하듯이 아시지요 아시지요합니다. 아닙니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법궤를 메고 요단강으로 걸어들어갈 때에 요단강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법궤를 메고 여리고성을 돌때에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가 모두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만 하면 그냥 그대로 교회가 성장하지 않고 예배드릴 것입니다. 그런데 4명의 중풍병자 친구들처럼 도전하는 것입니다.

1) 누가복음 18장의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처럼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고 하신 말씀처럼 주님을 번거롭게 하든지

2) 마가복음 10장 말씀처럼 나사렛 예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3) 누가복음 8장에 열두해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므로 낳음을 입은 것처럼

4) 마태복음 15장 57절의 가나안 여인의 고백처럼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는 말씀처럼 주님께 믿음을 보여드려야합니다.

 

매일 죄짖고 와서 아버지여 아시죠 하면 주님이 고처주십니까? 무엇인가 보여드려야하지 않습니까? 전혀 자신이 있는 것을 손해보지 않고 헌신하지 않고 아버지 아시지요 한다고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4장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예수님은 누구든지 치료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물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믿음을 보여주는 사람에게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신앙생활 오래한 사람들은 열정이 없어집니다. 올해도 있고 내년에도 있는데 오늘 주일예배는 다음주일 예배 또 있는데 오늘 새벽기도회 내일도 있는데 뭐 그리 중요하느냐? 아닙니다. 뒤로 물러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늘 이시간 우리에게 주어진 날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앞으로 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치료가 임하는 것입니다.

 

오늘 4명의 친구가 용신할 수 없는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보고 다음에 오지 예수님 다음기회에 만나자 하고 돌아갔다면 치료가 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역경을 뚫고 가날 때에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결단은 오늘입니다.

여러분 나 자신을 내가 더 잘 압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도 목사님의 입에서 나오는 비교가 아니라 내자신은 내가 잘 압니다. 목회자로서 삶을 보십시오. 오히려 우리 증조할아버지 보다 못한 목회자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을 비교해 보십시오.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그들은 300년을 카타콤에서 그리고 갑바도기아 토굴에서 살았지만 불평없이 주님을 기다리면서 살았습니다.

 

여러분 목회자가 되어서 사례비는! 그리고 목회자가 되어서 승용차는! 목회자가 되어서 명예와 성도의 숫자로 판단한다면 얼마나 철없는 목회자입니까? 많이 받으면 좋습니다. 그렇다고 적게 받는다고 불행한 목회자입니까? 여러분 우리 교단의 총회장을 진낸분이 2분이 감옥에 갔습니다. 인천교회 2억을 연금공단에 냈는데 100만원을 받았습니다. 우리 지방회 목사님은 2천만원을 냈는데 100만원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면서 큰교회를 운영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수백번 음난 죄를 짖고 그리고 수많은 거짓말을 하고 잘못할면서 교회나와서 거룩한척 하고 앉아있으면 그것이 진정한 신앙입니까? 마치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 예수님의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았지만 예수님을 비판하고 꼬두리 잡기 위하여 온것과 같은 것입니다. 자기에 대하여 실망하고 목사로서, 그리고 장로서, 안수집사로서, 권사로서, 집사로서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거짓할고 부정한 헌금을 하고 그리고 가식적으로 신앙생활하고 남이 보면 신앙생활 잘하고 남이 보지 않으면 헌금 적게 하고 외식적으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겉모습을 보시면서 회칠한 담이라고 하시면서 독사의 자식이라고 하면서 책망하셨습니다. 오늘 이 모든 거짓과 형식을 내려놓았으면합니다.

 

Covid19(코로나19) 우리에게 준 교훈은 깨끗하게 살아야합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살아야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깨끗한 환경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거짓말 한면 안되는 것입니다. 신천지가 거짓말니까? 온 나라에 바이러스가 퍼져나갔습니다. 이번에는 크럽을 다녀온 인천의 대학생이 거짓말하니까? 인천의 사람들이 4차 감염까지 이어지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거짓말 하지 말라고 신앙생활해야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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