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서론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 홀로서기 1 (서정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바람부는대로,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며 기다린다는 것은 한겨울의 눈발처럼 시리고 아프다.
지우고 싶다 이 표정 없는 얼굴을 버리고 싶다 아무도 나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수렁 속으로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데 내 손엔 아무것도 없으니 미소를 지으며 체념할 수밖에.
위태위태하게 부여잡고 있던 것들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날, 나는 허전한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서고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면 나는 <움찔> 뒤로 물러난다. 그러다가 그가 나에게서 떨어져 갈 땐 발을 동동 구르며 손짓을 한다. 만날 때 이미 헤어질 준비를 하는 우리는, 아주 냉담하게 돌아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파오는 가슴 한 구석. 떠나는 사람은 잡을 수 없고 떠날 사람을 잡는 것만큼 자신이 초라하다. 떠날 사람은 보내어야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일지라도.
나를 지켜야 한다. 누군가가 나를 차지하려 해도 그 허전한 아픔을 또다시 느끼지 않기 위해 마음의 창을 꼭꼭 닫아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이 절실한 결론을 <이번에는> <이번에는> 하며 여겨보아도 결국 인간에게서는 더 이상 바랄 수 없음을 깨달은 날 나는 비록 공허한 웃음이지만
아무도 대신 죽어주지 않는 나의 삶, 좀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나의 전부를 벗고 알몸뚱이로 모두를 대하고 싶다. 그것조차 가면이라고 말할지라도 변명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말로써 행동을 만들지 않고 행동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혼자가 되리라. 그 끝없는 고독과의 투쟁을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야 한다.
죽음이 인생의 종말이 아니기에 이 추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살아 있다. 나의 얼굴에 대해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홀로임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홀로 서고 있을, 그 누군가를 위해 촛불을 들자. 허전한 가슴을 메울 수는 없지만 <이것이다> 하며 살아가고 싶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랑을 하자.
기다림에 대하여
어린시절 정말로 많이 크리스마스를 기다린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생생하게 기억되는 것은 크리스마스 이브날 방송국에서 영화를 보여주며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기 위하여 기다린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중고등부 시절에는 크리스마스 케롤이 동양백화점에서, 홍명상가, 길거리마다 울려퍼진 기억이 있습니다. 중고등부 형님들과 함께 성전에 성탄 츄리를 장식하고 행복해했던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 담임목사님이 성전 꼭대기에 올라가지 못해서 저희들보고 올라 가라고 하셨던 것도 기억난다.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에 미리 지친 기억도 있다. 크리스마스날 밤세도록 놀다가 새벽송하느라 밤새도록 돌아다니다. 크리스마 예배를 졸면서 드린 기억들이 있습니다. 진짜 크리스마스는 졸고보니면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시간이 더 아름답고 행복했던 기억입니다.
어찌보면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어린 시절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이,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에는 빨리 졸업하여 대학교에, 직장생활을 기다리며 살았다. 특별히 군생활을 하면서 빨리 전역하는 것을 기다리면서 살았습니다. 저희는 28개월, 어떤 분들은 30개월 하신분들이 있다. 그런데 지금 18개월이라고 하니 너무 짭고 금방지나간다. 군생활하고 있는 자녀들에게 이야기하면 너무 야속하게 들리는 일입니다. 신학교를 다닐 때에는 빨리 목회를 하였으면 하는 기다림이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 성도들을 매주일마다 기다리면서 살아간다.
세상사람들은 무엇을 기다릴까? 은행적금의 만기일, 주식이 오르는 날을 기다릴까? 매주 로또를 사는 분들은 로또 당첨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기다림의 반대말은 조바심입니다. 베르그송은 기다림은 마치 물속에 설탕과 같다. 물이 녹는 동안 느긋하게 기다려야 한다. “만일 내가 설탕물 한 잔을 만들려고 한다면, 좋든 싫든 설탕이 물에 녹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다리지 못하고 미리 먹어버려 설탕만 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기다림의 행복을 느끼면서 살아가야합니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거리면 마음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행복하기 전에 마음의 초조함이 들수 있다. 마음이 부산해지고 마음이 지옥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주시는 기다림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시계를 처다보고 핸드폰을 처다보고 늘 평온을 잃고 살아간다.
우리 시대는 기다리지 못하고 사는 시대입니다. 즉시 배달되는 음식, 매일먹는 인스탄드 라면, 정크푸드, 퀵서비스. 그러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들의 대부분은 기다려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자가 먹이감을 기다리듯이, 악어가 물속에서 먹이 감을 기다리듯이, 우리 밥을 해놓고 뜸을 드리기를 기다리듯이 우리는 더 좋은 것들을 위하여 기다려야합니다. 엄마 뱃속에서 미숙아로 나오지 않기 위하여 10달을 기다려야합니다. 어느 인간을 나면서 달릴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하교 대학교의 과정을 거처야 진정한 성인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모든 과정속에서 기다려야한다. 중학교 1학년인데 빨리 성장하기 위하여 학교를 그만 두고 사회로 진출하려는 학생이 있다면 참 바보 같은 생각이 든다.
초림 예수님이 오실 때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재림예수님이 오심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우리가 여유를 가지고 기다릴 수 있는 것은 약속의 말씀이 한번도 공수표가 된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실 것을 700년 전에 예언한 이사야 선지자, 베들레헴에 오실 것을 700년 전에 예언한 미가 선지자도 (미가 5:2,4~5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5 이 사람은 우리의 평강이 될 것이라
기다리지 못한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낳고 이스라엘과 중동은 매일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시 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시편 37편 7절을 매일 읽고 묵상하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링컨 대통령입니다. 그는 선거에 질때 무슨 일이 안될 때에 늘 이 시편을 읽고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오늘 본문은 2사람이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 안나 (84세)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과부되고 84세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안나 할머니는 나이가 약 100세정도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혼 생활 7년 그리고 혼자 된지 84세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13세에 결혼했다면 20세에 혼자되어서 104세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불교의 큰 스님과 기독교의 목사님들 비교
불교의 큰 스님들 중에 효봉스님은 78세에, 청담스님은 70세, 성천스님은 82세, 법정스님은 79세 소천하였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대표적인 목사님들은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님은 99세, 영등포교회 방지일목사님은 104세, 충현교회 김창인목사님은 96세, 경동교회 강원용목사님은 90세, 조용기목사님은 87세에 소천하였습니다.
불교의 스님들은 공기좋은 곳, 물이 좋은 곳, 오염이 없고 깨끗한 곳에서 고기도 먹지 않고 채소만 먹으면서 살아가셨습니다. 심장으로 향하는 혈관들이 기름이 끼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는데 목사님들보다 일찍 그것도 20년이상 일찍 소천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특별히 큰 교회 목사님은 매일 새벽기도회, 수요예배, 철야, 주일예배를 준비하시면서 공기도 좋치 않는 곳에서 살아가면서도 더 오래 사신 이유가 무엇일까? 똑같이 새벽기도회하지만 살아계신 분과 돌아가신 분에게 예배가 다르기 때문에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2) 시므온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시므온은 할례 받으러 올라온 아기 예수님을 이렇게 예언합니다.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예수님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실 것을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질병으로 고생하는 자들, 가난한 자들, 교만한 종교지도자들, 부자들, 나라의 고관들을 만나면서 살아가셨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으로, 눈먼자 병든자에게 치료를, 눌리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희년 해방을 선포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마태복음 15:24)이었지만,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베들레헴 오셨습니다. 그 대부분의 생애를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남으로 문제를 해결해주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칼로 사람들의 마음을 찔러 쪼게기까지 하셨습니다.
수가성에 만난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되었습니다. (요한복음 4장) 성적인 물난함, 종교적인 무지로 살았지만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삶으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 지역 두로와 시돈 지역에서 가나안여인(수로보니게여인)에게 딸의 치료를 해주시면서 살아가셨습니다. (마태복음 15:22)
예수님은 상류층도 접촉할실 때에 비천한 여인까지 치료하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길에 12년동안 혈루증으로 인하여 부정한 여인을 손대시며 치료하셨습니다. (마태복음 9:20~22; 마가복음 5:25~34; 누가복음 8: 43-48).
바리새인들과 함께 식사하실 때에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어 눈물로 그 발을 적시는 여인에게 죄사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인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남자들과 죄인이며 지위가 낮은 여성를 비교하시며녀서 그 여인에게 구원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7장3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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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신과의 진정한 만남이 있어야합니다.
2) 꿈과 기회와의 만남이 있어야합니다.
3) 그 꿈과 함께 할 사람이 있어야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성탄절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누구와의 만남이 중요합니다. 우리 가족과의 만남, 우리 교회의 성도들과의 만남, 그리고 영적으로 우리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여러분 병들어 죽어 가고 있는 환자가 있다면 좋은 의사와의 만남이 축복입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데 자신을 살릴 수 있다면 자신의 모든 돈을 다 주고도 그 병을 고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만 아기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질병과 모든 죄를 해결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분을 만나는 것이 축복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주로 생일 케이크를 먹습니다. 일년 판매량의 30%가 12월 23~25일 사흘 동안 팔립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에 먹는 독일의 음식이 있습니다. 슈톨렌이라는 빵입니다. 슈톨렌 독일어로 ‘막대기’를 의미하는 슈톨렌은 틀 없이 손으로 반죽합니다. 가늘고 긴 모양으로 되어있습니다.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어 며칠전 부터 미리 구워둡니다. 속 재료가 많이 들어가 잘 부풀지 않고 발효를 돕는 스펀지 반죽을 추가하여 만든 빵입니다.
유래는 수도원에 만든 빵입니다. 수도원에서 경건생활을 위하여 음식을 맛없게 만들지만,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하여 견과류와 버터를 집어넣어 아주 맛있게 만든 빵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형상화하기 위하여 강보의 천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독일 가정에서는 크리스마스를 한 달 앞두고 슈톨렌을 한 덩어리 삽니다. 일주일에 한 조각씩 슈톨렌을 잘라 먹으면서 크리스마스를 기다립니다. 비닐랩으로 싸두고 먹습니다. 숙성될수록 맛이 깊어지는데, 이 맛의 변화를 음미하는 것이죠. 버터와 설탕이 속까지 깊숙이 배어든 슈톨렌은 상온에 몇 달을 두어도 굳거나 상하지 않습니다.
필리핀에서는 크리스마스를 11월 1일부터 준비합니다. 2달을 준비합니다. FACEBOOK에서는 자신의 집을 아름다운 성탄 츄리로 꾸민 것을 자랑합니다. 마포구 교구협의회의에서 올해부터 자신의 교회 앞에 크리스마스와 신년 해 프랑카드를 걸어 놓고 예수님의 오심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성탄의 정신을 백화점으로, 대형마트(이마트, 홈프러스), 상점(나이키, 아디다스), 빵가게로 성탄의 정신을 빼앗겼습니다. 그곳은 돈의 신 (만몬신)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다시 교회로 옴겨와야합니다. 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옴겨와야합니다. 크리스마스의 정신으로 이 사회와 문화를 바꾸어야합니다.
재림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베드로후서 3장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몽골제국의 칭기즈칸에겐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9명의 공신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타르탄’이라 불렀는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자’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9번째 공신인 타타르족의 쉬히호톡에서 유래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제국을 완성한 후 칭기즈칸은 타르탄들에게 6가지의 특권을 부여합니다.
1) ‘언제든지 허락 없이도 내 방에 들어올 수 있다’
2) ‘전쟁이 끝나면 노획물 중에 가장 좋은 것을 가질 수 있다’
3) ‘모든 세금을 면제한다’
4)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어도 9번까지 용서받는다’
5) ‘갖고 싶은 땅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
6) ‘이러한 권리는 4대까지 줄 수 있다’ 등입니다. 목숨을 걸고 끝까지 충성했던 그들에게 엄청난 보상과 특혜를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타르탄이 되십시오. 그분은 우리를 가장 존귀한 자로 여기십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자들에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우리에게 주실 약속의 축복을 선물을 기다리면서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평강이 간증)
여성들 혼자된 여성입니다. 고아와 과부들은 경제적으로 어렵고입니다. 힘들었습니다. 무엇인가? 했습니다. 기도하면서 섬겼습니다. 성전을 떠나지 않습니다. 금식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없어서 못먹는 금식입니다.
할머니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습니다.
내세울수 없는 여인입니다. 그 오랜 시간을 살았다고하였습니다.
나의 모습이 어떻게 평가되기를 원하십니까?
누가복음 2장 25절입니다. 시므온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입니다. 죽지 않으리라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입니다. 소망을 기다리는 자입니다.
노인이라고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사람입니다. 죽지않으라.
메시야를 보게 될 것이다. 누가 2장 27절입니다. 예루살렘성전에 들어옵니다. 40일(남자) 80일(여성) 성전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감동이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옵니다. 죽기전에 만나게 될것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가슴의 품고 28절에 절.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절.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38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놀랍게 여기더라….
이장면입니다.
마침 이때에 나오서입니다. At the same time. 안나가 아기를 안고 축복하지 않았습니다. 그 현장에서 보게됩니다. 100살에 나이가 많아서 바라보고있습니다. 메시야입니다. 하늘의 평강을 모시고 있습니다.
메시야 430년 동안기다렸는 모세를 통하여
70년동안에 바벨론에서 구원하였습니다. 고레스에 의하여
로마의 억압에서 속량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기다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할 것을 원하고있습니다.
주 은혜의 해를 통하여입니다. 해방되는 것입니다. 메시야를 통하여입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