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도 작은 기도 (책 참고: 이것이 기도다)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6년 5월
누가복음 2장 13.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15.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기도 5번째 말씀을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도의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기도의 종류중에서 큰 기도가 있고 작은 기도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성경에서 나오는 크고 담대한 기도, 작고 섬세한 기도에 대하여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사가랴의 기도 (담대하고 과감한 기도)
누가복음 2장 13.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15.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이 천년 전에 성소에서 묵묵히 봉사하는 노년의 남성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사가랴입니다. 그는 제비를 뽑기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고 성소에서 분향 드리는 제사장으로 선택되었습니다. 그 맡은 임무는 영광스러운 특권이였습니다. 수많은 제사장 중에 성전에서 들어가서 백성과 제사장의 대표가 되어서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것은 일생 중에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한 사건입니다.
사가랴 역시 이 직분을 생애의 축복의 기회로 바뀌었습니다. 사가랴가 성전에 봉사하는데 성소가 갑자기 밟은 빛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천사가 그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아마도 사가랴는 갑작스러운 천사의 등장으로 무척이나 놀랐을 것입니다.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 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을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라 (눅1장 13절)
부부에게 자녀가 생기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있었던 일입니다. 놀라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성경은 사가랴는 늙었고 엘리사벳은 임신할 나이가 훨씬 지났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엘리사벳은 원래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여자였습니다. (눅1:7.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그들이 이제 부모가 될 수 없는 상황이였지만 기쁜 소식을 전하기 전에 “너희 간구함이 하늘에 들렸다.”고 하였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어떤 간구를 했던 것일까? 엘리사벳의 태를 열어 아이를 갖게 해 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했던 것입니다. 짐작컨대 아마도 그랫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한 기도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아이를 낳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한 일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들은 연세가 지긋한 노인들이였습니다. 아이를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담대하게 용기 있게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영적인 배짱이 있는 분입니다. 주님 집사님과 함께 해주세요. 주님 권사님을 축복해주세요.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전심을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기도하는 것입니다. 담대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이영순집사님, 김옥자 집사님 나아질 기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끝가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행하시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입니다.
우리는 사가랴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기도에 불가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만하거나 무책임한 기도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만큼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리더십의 전문가 짐 콜린스는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기업창립자 세대를 넘어 2대 3대까지 번영하는 기업들의 중요한 특징이 있는데 크고, 담대하고 과감한 목표라는 것입니다. (Big, Hairy, Audacious Goal)
요한복음 14장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저는 매일 빼놓치 않고 기도하는 제목이 있습니다. 우리교회의 부흥입니다. 지금 이루워지지 않고 앞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부흥하지 못할 기도제목입니다. 우리의 교회 10구역 150명의 성도입니다. 개척 초기부터 기도하는 제목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에서 멀어지는 느낌을 들게합니다. 다시 한번 더 크게 기도하는 기도제목이 되었으면합니다. 10구역 150명을 위하여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한가지 실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에 성전에 오시면 꼭 5분 이상 주여 3번 부르시고 기도를 시작하고 봉사도 시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를 일군으로 만들지 마시고 하나님의 주의 종으로 만들어주세요.
베드로의 경우 예수님은 3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실수 많고 다혈질인 사도였습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3000명씩 5000명씩믿는 자의 숫자가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기도하니 앉은뱅이가 치료받고,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좀더 크게 좀더 담대하게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들의 담대함
여자 홀몸으로 힘든 농사일을 하며 판사 아들을 키워낸 노모는 밥을 한끼 굶어도 배가 부른 것 같고 잠을 청하다가도 아들 생각에 가슴 뿌듯함과 오유월 폭염의 힘든 농사일에도 흥겨운 콧노래가 나는 등 세상을 다 얻은 듯 해 남부러울 게 없었다. 이런 노모는 한해 동안 지은 농사 걷이를 이고 지고세상에서 제일 귀한 아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 한복판의 아들 집을 향해 가벼운 발걸음을 제촉해 도착했으나 이날 따라 아들 만큼이나 귀하고 귀한 며느리가 집을 비우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만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아들이 판사이기도 하지만 부자집 딸을 며느리로 둔덕택에 촌노의 눈에 신기하기만 한 살림살이에 눈을 뗄 수 없어 집안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뜻밖의 물건을 보게 되었다.
그 물건은 바로 가계부다.부자집 딸이라 가계부를 쓰리라 생각도 못했는데 며느리가 쓰고 있는 가계부를 보고 감격을 해 그 안을 들여다 보니 각종 세금이며 부식비, 의류비 등촘촘히 써내려간 며느리의 살림살이에 또 한 번 감격했다.
그런데 조목조목 나열한 지출 내용 가운데 어디에 썼는지 모를 ‘촌년10만원’이란 항목에 눈이 머물렀다. 무엇을 샀길래 이렇게 쓰여 있나 궁금증이 생겼으나 1년 12달 한달도 빼놓지 않고 같은 날짜에 지출한 돈이 바로 물건을 산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에게 용돈을 보내준 날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촌노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아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 아들 가족에게 줄려고 무거운 줄도 모르고 이고지고 간 한해 걷이를 주섬주섬 다시 싸서 마치 죄인된 기분으로 도망치듯 아들의 집을 나와 시골길에 올랐다.
가슴이 터질듯한 기분과 누군가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분통을 속으로 삭히기 위해 안감 힘을 쓰고 있는 가운데 금지옥엽 판사 아들의 전화가 걸려 왔다.
“어머니 왜 안주무시고 그냥 가셨어요”라는 아들의 말에는 빨리 귀향 길에 오른 어머니에 대한 아쉬움이 한가득 배어 있었다. 노모는 가슴에 품었던 폭탄을 터트리듯 “아니 왜! 촌년이 어디서 자-아”하며 소리를 지르자 아들은 “어머니 무슨 말씀을….,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노모는 “무슨 말, 나보고 묻지 말고 너의 방 책꽂이에 있는 공책한테 물어봐라 잘 알게다”며 수화기를 내팽기치듯 끊어 버렸다.
아들은 가계부를 펼쳐 보고 어머니의 역정이 무슨 이유에서 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내와 싸우자니 판사 집에서 큰 소리 난다 소문이 날꺼고 때리자니 폭력이라 판사의 양심에 안되고 그렇다고 이혼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사태 수습을 위한 대책마련으로 몇날 며칠을 무척이나 힘든 인내심이 요구 됐다.
그런 어느날 바쁘단 핑계로 아내의 친정 나들이를 뒤로 미루던 남편의 처갓집을 다녀오자는 말에 아내는 신바람이나 선물 보따리며 온갖 채비를 다한 가운데 친정 나들이 길 내내 입가에 즐거운 비명이 끊이질 않았고 그럴 때마다 남편의 마음은 더욱 복잡하기만 했다. 처갓집에 도착해 아내와 아이들이 준비한 선물 보따리를 모두 집안으로 들여 보내고 마당에 서 있자 장모가 “아니 우리 판사 사위 왜 안들어 오는가”, 사위가 한다는 말이 “촌년 아들이 왔습니다” “촌년 아들이 감히 이런 부자집에 들어 갈 수 있습니까”라 말하고 차를 돌려 가버리고 말았다.
그날 밤 시어머니 촌년의 집에는 사돈 두 내외와 며느리가 납작 엎드려 죽을 죄를 지었으니 한번만 용서해 달라며 빌었다. 이러한 일이 있고 난 다음달부터 ‘촌년 10만원’은 온데간데 없고 ‘시어머니의 용돈 50만원’이란 항목이 며느리의 가계부에 자리했다.
이 아들을 보면서 지혜와 용기를 보다는 역경대처 기술이 능한 인물이라 평하고 싶고, 졸음이 찾아온 어설픈 일상에서 정신을 차리라고 끼얻는 찬물과도 같은 청량함을 느낄 수 있다.(펌)
2. 사소한 것도 기도하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6장 1절-7절에
1.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2.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가져다가 그 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가라 하는지라
3. 그 하나가 이르되 청하건대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가리라 하고
4. 드디어 그들과 함께 가니라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5.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하니
6.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 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7.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하니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라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하시는 목사님이 별로없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는 본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소한 것도 응답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젊은 제자들을 양성했습니다. 말하자면 선지자 훈련학교를 운영하였습니다. 즉 신학교를 세웠던 것입니다. 당시 엘리사에게 훈련을 받는 것은 선지자 엘리트 코스를 밟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중에 하나인 엘리야의 수제자입니다. 요단강을 혼자서 건넜고 수많은 주의 기적과 이사가 있었습니다.
요단강가에 건물을 짖게되었습니다. 지금 말하면 신학교 강의실을 짖게 되었습니다. 마치 김종국목사님과 윤정열목사님의 신학교를 지어 신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 같은 것입니다.
재목으로 사용할 나무를 베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제자 한 명이 쇠도끼를 물에 빠드렸습니다. 그 도끼는 곧 물속 깊이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도끼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당시 농경 사회에서 도끼는 상당히 귀중한 도구였습니다. 그 제자는 아마도 도끼 주인에게 잘 쓰고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했을 것입니다. 그랜서 그는 엘리사에게 사실 그대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빌려온 도끼를 물속에 빠뜨렸습니다. 엘리사의 도움을 받을까 하는 생각을 들었지만 그냥 보고의 차원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 훈련하는 전도사님의 기도가 응답되었던 것입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과부의 아들을 살렸고, 가뭄이 끝나고, 강 갈라지고, 악한 왕이 벌하기도 하고, 특별히 별것 아닌 것을 기도하였더니 응답되었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엘리사는 제자의 말을 듣고 도끼가 떨어진 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나뭇가지를 꺽어 도끼가 떨어진 곳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곧 이어서 도끼가 수면 위에 떠 올랐습니다. 덕분에 제자는 도끼를 찾았고 나무를 다 벤 뒤에 주인에게 무사히 돌려줄수 있었습니다.
잛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 역사입니다. 사소한 문제입니다. 그냥 도끼가 없어졌으니 저 같으면 가까운 곳에서 도끼 한 자루를 사가지고 와서 올 때에 롤케익 하나를 사가지고 와서 도끼를 잊었는데 새것으로 사왔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 빵이나 좀 드세요하고 말 내용입니다.
왜 성경의 저자는 이 내용을 이곳에 기록하여 우리에게 영적으로 주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일까요? 시시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시시한 기도도 하나님께 기도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건을 잊어버렸을 때에 그 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작은 문제까지라도 기도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도끼처럼 우리 눈에 별 것 아닌 것도 하나님의 눈에는 큰 것이 될 수 있고 사건이 될 수 있습니다.
우주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세상의 수많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나같은 것이 기도한다고 되겠는가?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100마리의 양중에 한 마리의 양을 찾아가지고 그 벗과 이웃을 불러 함께 즐거워하는 모습입니다. 즉 양 한 마리를 찾았는데 그것을 통하여 더 많은 지출을 하게 됩니다. 8절에 열드라크마 하나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 잃은 드라크마를 찾게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기쁨을 나누는 것입니다. 오히려 돈이 더 들수 있습니다. 자신의 제산을 축낸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제산 축내서 손해, 그리고 잔치해서 손해 이리 저리 손해를 보지만 우리 주님의 눈에는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마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작은 일 때문에 기도를 하지 않고 걱정부터합니다.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개역개정] 누가복음 12:7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이 사건의 뒷 이야기를 상상해보았습니다. 이 신학생이 그 도끼를 들고 그 원주인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그 도끼를 돌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스승님이 이러한 일들을 하셨다고 간증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학생은 성령의 충만하게 되지 안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체험했으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목회를 하면서 20년 동안 하나님께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성도들이 왜 믿음이 약하지고 우리 성도들이 왜 믿음이 떨어지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체험하지 못하는 신앙 때문이라고하였습니다.
춘천의 한 마음침례교회 춘천 한마음교회 김성로 담임목사
1990년 8월 20일에 창립된 기독교 한국 침례회 춘천한마음교회는, 일단 외형만 보자면 크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강원도 춘천시 동면 장학리에 위치하고 있고, 예배당은 소를 기르던 우사(牛舍)를 개조하여 만든 자그마한 시골 교회이다. 현재 교인 수는 1,300여 명 정도 된다. 한마음교회는 장년부 850명, 유치부 100명, 초등부 110명, 중고등부 130명, 청년 대학생 10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치부, 초등부, 중고등부, 그리고 대학청년부가 전체 출석교인의 40%이며, 전체 성도의 약 90%가 50세 미만으로 구성된 젊은 교회이다. 예배는 새벽예배, 수요예배, 토요찬양예배, 주일 1·2부예배로 구성되어 있다. 새벽예배는 새벽 5시에 시작하여 7시까지 이어지며, 새벽예배를 드린 성도들은 함께 체조를 하고, 함께 아침식사를 한다. 그 후에 각자의 직장과 학교와 가정으로 돌아가 일상생활을 시작한다. 토요일 저녁 8시부터 시작되는 토요찬양예배에는 서울 경기 충남 강원 등 전국 각지에서 성도들이 모여든다. 8시에 시작된 찬양예배는 이후 늦은 시각까지 뜨거운 기도로 이어진다. 토요찬양과 주일 1·2부 이 세 번의 예배는 1박 2일동안 이어지는 축제에 가깝다. 뜨거운 찬양과 간증, 그리고 말씀과 기도의 열기는 매주 더욱 뜨겁게 느껴진다.
개척 이후 나는 강한 훈련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와 같은 재생산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자‘왜 사람이 변하지 않는가’를 계속 고민했다. 문제는 복음에 있었다. 복음이 먼저고, 그 다음이 훈련이었는데 순서가 뒤바뀌어 있었다. 초대교회와 같은 순수하고 강력한 복음이 아니었기에 진정한 굴복과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초대교회 복음의 핵심은 바로‘부활’과‘주되심’이었다. 사도행전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부활의 표적을 통해 예수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시고,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보여주셨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십자가에만 머물러 있었다. 제자들처럼‘부활’을 통해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 것인데 부활의 신앙이 약하고 십자가에만 머물러 있으니 예수님 앞에서의 진정한 굴복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었다. 부활의 표적을 통해 예수님의 주인되심이 선명해지니 예수님을 마음에 주인으로 믿지 않는 죄(요16:9)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게 되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기가 주인된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 그리고 성경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주인으로 믿는 참된 믿음을 통해 사람이 진정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지금 우리 교회에서 계속되고 있다. 현대사회의 만연한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적 사고가 오직 복음의 능력으로 철저히 부서지는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도 이와 같은 성령의 역사와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해야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