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9장 1절 삭개오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5년 7월 18일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세상에서 만남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1. 만남의 중요성
  2. 삭개오와 예수님과의 만남

삭개오는 어떤 사람인가? 누가복음 19장 7절 말씀은 삭개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보여줍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평이 좋지 않았습니다. 뭇사람들은 그를 보고 수군거리며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했습니다. 특히 세리로서 동족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로마에 바치는 그의 행동은 유대인들에게 매국노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중에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잠시 역사적 배경을 더하여) 마치 우리의 역사 속 을사오적(乙巳五賊)처럼 말입니다. 박제순, 이완용, 이지용, 권중현, 이근택 이 다섯 명의 대신들은 당시 일본의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을사늑약에 찬성하거나 동의하였습니다. 박제순은 외무대신으로서 조약의 대표였고, 이완용은 젊은 시절 고종의 아들 세자(순종)를 가르쳤을 정도로 측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팔아넘기는 데 앞장섰습니다. 이들을 암살하려는 ‘오적암살단’ 같은 단체가 결성될 정도였으니, 그들의 평판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평판이 좋지 않은,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으십니까? 혹 이러한 분들이 우리 성원순복음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린다면 우리 교회 성도들이 좋아할까요? 물론 그들이 헌금을 많이 한다고 해서 부정한 돈으로 교회가 부흥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

 

1절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절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절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삭개오는 많은 사람들로 인해 예수님을 보기 어려웠지만, 그를 향한 간절함이 얼마나 컸던지 까치발까지 들었을 것입니다. 키가 작고 몸집이 있었을 그가 예수님을 보고자 하는 뜨거운 열망으로 가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볼 수 없자 그는 뽕나무, 정확히는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갔던 것입니다.

 

삭개오 외에도 예수님을 보고자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헤롯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던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는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헤롯 대왕과는 다른 인물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이나 이적에 대한 호기심, 혹은 정치적인 관심 때문에 예수님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빌라도가 보낸 예수님을 마침내 만났지만, 예수님은 헤롯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 사람들: 유월절에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왔던 이방인 그리스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명성을 듣고 빌립을 찾아와 “선생님, 우리가 예수를 뵙고자 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헤롯왕이나 그리스 사람들처럼 우리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궁금증을 채우기 위해 예배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심을 믿고 그분에게 경배하며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잠언 8장 17절 말씀처럼 간절히 찾는 자가 하나님을 만나는 원리와 같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17)

 

여기서 ‘간절히'(히브리어로 ‘샤하르’, שָׁחַר)라는 단어는 단순히 찾는 것을 넘어 ‘일찍 일어나 찾다’, ‘부지런히 찾다’, ‘열심을 다해 찾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마치 새벽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듯이,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끈기 있게 추구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1.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이유

 

4절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절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예수님은 삭개오의 간절한 궁금증과 노력을 아시고 반응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이름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김춘수 시인의 시 <꽃>처럼 말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시처럼,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그저 ‘하나의 몸짓’, 아무 의미가 없는 사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에 그 대상은 나에게 특별한 ‘꽃’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 중 저와 여러분들의 이름을 불러주실 때,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되고 그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이름을 불러보시기를 바랍니다. (유재석) 홍철기야, 이정숙아, 홍평강아, 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보십시오.

 

삭개오가 오르기 쉬웠던 돌무화과나무의 특징 돌무화과나무는 가지가 낮고 넓게 퍼져 있습니다. 일반적인 나무는 위로 쭉 뻗어 있지만, 돌무화과나무는 땅에서부터 낮게 시작해서 옆으로 넓게 퍼져 있기 때문에 기어오르기가 쉽습니다. 가지가 굵고 튼튼하여 키가 작은 삭개오도 계단처럼 가지들을 밟고 쉽게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나무 위로 점프하거나 매달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지요. 또한 여리고 지역의 길가에 흔히 심겨져 있던 나무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간절함으로 인해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으로 친히 오십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여러분, 자신의 집을 열어 원주민과 함께 생활하며 음식을 나누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필리핀에서 선교할 때 함께했던 김○○ 선교사님도 그렇게 자신의 집을 열고 원주민과 생활하셨는데, 사모님이 얼마나 힘들어하셨는지 피부로 느꼈습니다.

 

교회가 부흥할 때에는 우리 성도님들이 열심히 구역 예배를 드렸습니다. 김○○ 권사님과 김○○ 권사님이 구역장이 되시고, 원○○ 안수집사님이 남성 구역장이 되셔서 열심히 섬겨주신 것이 너무나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교회의 부흥은 구역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40절: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누가복음 10장 16절: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1. 영접 후 변화된 삭개오

 

7절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절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절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삭개오의 가정에 주님이 들어오셨을 때, 삭개오가 **”주여 보시옵소서”**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단순히 “예수님, 제 말을 들어보세요”, “제 상황을 보세요”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제 자신의 결단과 변화를 주님 앞에 보이겠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시고, 주변에서 수군거리고 비방하지만 예수님이 자신의 집에 들어와 주심에 감사하여, 이제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누가복음 19장 8절)

 

1) 회개: 이것은 공개적으로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부정한 행위를 이제 그만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주님이 증인이 되어 주셔서 이제는 바르게 살아가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2) 회개 후에 변화: 불의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다른 사람을 돕는 마음으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남의 것을 속여 빼앗은 것이 있다면 4배나 갚겠다고 선언합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2배를 갚아야 하지만, 삭개오는 4배를 갚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철저한 회개, 삶의 방향을 완전히 돌이키겠다는 삭개오의 진심을 의미합니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과 마르틴 루터 목사님도 “진정한 회개는 돈 지갑에서 나온다”고 강조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헌금을 많이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올바르게, 정직하게 헌금하며 물질을 사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에게는 물욕이 있기 때문에 재물에 대한 헌신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의 인격은 그 사람의 씀씀이에서 나옵니다. 가치관과 성품, 신앙관이 바로 재물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물질적으로 어려워서 헌금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기 위해 헌금한다면, 그것은 마치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같은 외식적인 신앙입니다. 입술로만 “회개합니다”라고 하고, 진정한 회개인 물질의 회개가 없다면 아무런 변화도 없는 껍데기뿐인 회개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삭개오가 바로 진정한 회개의 장면을 보여줍니다. 불의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가장 먼저 돈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완전히 바꾼 것입니다. 자신의 소유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고,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로 갚겠다고 선언했으니, 그의 돈 지갑, 즉 물질관이 완전히 회개한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삭개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누가복음 19:9)

 

결론

 

선교는 어찌 보면 거룩한 낭비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 결단하고 드리는 일들을 통하여 기적을 베풀어주십니다. 선교 헌금을 통해 물질을 드리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안정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필리핀에서 선교하다가 돌아왔는데, 필리핀과 우리나라의 다른 점은 바로 ‘헌신’입니다. 필리핀에도 5만 교회가 있고, 우리 대한민국에도 5만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것은 물질적인 헌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천 명 중에 하나, 만 명 중에 하나를 뽑아서 예수님을 믿게 하셨다고 한다면) 지금은 다섯 명 중에 한 명을 뽑아 예수님을 믿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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