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9.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오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달이 있다면 아마 5월과 10월 일 것입니다. 그중에 최고의 계절은 5월은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만물이 푸르름을 더해 가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5월달 가정의 행사 중에 어린이 날, 어버지이 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청년의 날이 이달에 있습니다. 5월 한 달 가정과 그리고 부모님을 생각하고 자녀를 생각하는 한 달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누가복음 15장을 통하여 우리가 중요한 가치를 두는 것은 잃었다가 찾은 기쁨일 것입니다. 100마리 양 중에 한 마리의 양을 찾고 기뻐하는 것, 10드라크마 중에서 한 드라크마를 찾고 기뻐하는 것, 2명의 아들 중에 한 아들 탕자를 찾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무엇을 잃었다가 찾은 기쁨이 있습니가? 양, 여러분의 질병을 잃었다가 예수님의 어린의 피로 치료받은 적이 있습니까? 정말 기쁨이 넘처납입니다. 둘째로 물질입니다. 그동안 잃었던 물질이 예배를 통하여 회복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번째로 가족관계에서 서먹서먹하고 답답한 관계에서 탕자처럼 돌아와 기쁨이 있는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정의 달 오월에 여러분의 가정에 회복의 은혜 다시 찾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어버지
1) 아버지는 관용이 많으신 분입니다. 막내 아들이 재산을 달라고 하였을 때에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고 막내 아들의 몫을 주시는 관용 많으신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 안의 원숭이처럼 가두워 두시는 분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있도록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2) 아버지는 사랑이 많으신 분입니다. 막내 아들 탕자가 돌아올 때에 다시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끝이 없으신 분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죄를 몇번이나 용서하셨을까요? 맹세하고 또 죄짓고 또 맹세하는 모습은 평생 우리의 삶속에 계속 될 것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3) 아버지는 헌신하신 분입니다. 큰아들에게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아들이 왜 저에게는 염소새끼 한 마리도 주지 않았습니까? 할 때, 다 네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유산을 남기고 죽은 고 이건희 회장의 유산에 대한 상속세 12조 원을 5년에 걸쳐 분납하기로 했다. 또 1조 원을 코로나19 극복과 의료 지원을 위해 기부하고 2만3000여 점의 미술품을 국가에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26조 원에 달하는 이 회장의 유산 중 60%가 세금으로 납부되거나 사회에 환원되는 셈입니다. 상속세는 세계 최대 수준이다.
우리 예수님은 고 이건희보다 더 위대하신 분입니다. 온 인류의 죄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온 인류의 사람들에게 전부 주시고 가신 분입니다.
4) 어느 신학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본문의 아버지는 하나님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보면 아버지는 남편 아버지와 아내 어머니가 동시에 있는 분이라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재산을 절대로 아들에게 주지 않습니다. 아들에게 재산을 줄 사람은 어머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들이 요구하면 주는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들이 돌아올 때에 아버지는 헛 기침만 하고 어머니가 안아주시고 그리고 등허리를 어루만지시는 분이 어머니입니다. 렘브란트가 그린 그림에서 오른 손은 아버지의 손, 왼손은 어머니의 손으로 그렸고, 눈은 맹인의 눈으로 그렸습니다. 모든 허물을 보지 않고 용서하시는 모습니다.
우리나라에의 소설중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중의 하나가 바로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입니다.
서울역에서 엄마를 잃어버렸습니다. 여러분들은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 가보고 싶어하는 여행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을 알고 계시는지요? 여러분들은 이 모든 것에 쉽게 대답할 수 있던가요?
소설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째다. 아버지의 생일상을 치르려고 서울로 올라오던 중에 잃어버렸습니다. 무심한 아버지는 혼자 전철을 타고 가버립니다. 늘 당연히 따라올 줄 았았던 것입니다. 전철타는 법도 모르고 주소가 있어도 아들 집을 찾아갈 줄 모르는, 그저 자식 밖에 모르는 어머니는 서울 한복판에서 사리져 버렸습니다. 광고를 내고 전달지를 돌려 엄마를 찾았지만 찾지 못하였습니다. 공기처럼 소중하지만 있을 때에는 얼마나 귀한 존재라는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꿈과 소망이였던 큰 아들, 오빠들과 구분하는 말로 딸들을 계집애라고 부르면서도 상을 엎으면서도 저항할 정도로 학교에 보내며 본인처럼 살지 않겠다고 생각한 큰 딸, 유치원도 보내고 운동화도 사주고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해보게 했던 막내 딸, 걸을 때에는 엄마보다 빨리 걸으며, 육아 생계까지 떠넘긴 아빠. 우리는 엄마를 잃어버리기 전부터 엄마의 부재를 서서시 잃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전단지를 만들기 위하여 자식들이 엄마에 대하여 아는 내용들을 적어보던 것처럼 저도 엄마의 이름, 그리고 생년월일, 제가 아는 엄마의 모든 것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엄마에 대하여 A4 용지의 반절도 못체웠습니다. 과연 우리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모르는 딸과 아들이였습니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유는 엄마는 자식들이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기 때문에 자식이 좋아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9개월이 지나도록 엄마를 찾아내지 못하고 멀리 유럽 여행을 떠난 큰딸은 성 베드로 성당 앞에 무릎을 끓고 아기 예수를 품고 있는 피에타 상 앞에서 흐느끼며 내뱉은 한마디, 우리 엄마 엄마를 부탁해입니다.
9개월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고 가족들은 생사를 모른체 엄마는 결국 죽고 만다는 내용입니다. 제가 신경숙씨라면 소설가라면 결론을 다시 엄마를 찾은 기쁨에 대하여 소설의 결말을 맺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여운을 남기기 위하여 어머니가 어디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소설을 끝마치겠습니다. 결국 한마리의 새가 되어 떠나는 그 순간에도 가족에 대한 원망보다는 걱정하며 날아버립니다. 엄마를 찾는 것은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것 뿐만아니라 그동안 모른척 했던 엄마의 삶에 대한 보상을 하려고 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소설에 담고 싶었지만 작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에게도 한 여자로서인데 처음부터 엄마는 엄마로 태어났던 것 처럼 대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 엄마에게도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곳이 있었을텐데 늘 가족을 위해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농사를 짓는 엄마를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소설 가운데에서도 우리 주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늘 산소처럼 우리 주위에 있지만 우리는 그 고마움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늘 계시지만 그 고마음을 알지 못하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알지 못한 것 처럼 우리는 우리 주님에 대한 고마움을 알지 못하고 은혜를 알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2. 큰아들
1) 성실한 모습 그러나 포용성이 없습니다.
밭을 갈다가 돌아온 모습을 통하여 그는 자신의 일에 충실했습니다. 아버지의 소유를 잘 관리하였습니다. 신앙에서 떠난 적이 없지만 포용성이 없는 아들입니다.
2) 질투심이 많은 모습니다. 자기 동생이 돌아왔는데 아버지의 재산을 창기와 함게 먹어버린 자신의 동생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아버지의 재산을 먹어 버리지 않을까 질투심이 가득한 형입니다.
3) 소심하고 계산적인 모습니다. 탕자를 위하여 소를 잡아준 것을 보고 자신을 위하여서는 염소세끼 한 마리도 잡아주지 않았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것이 다 네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잡고 싶으면 잡고 먹어된다고 하시면서 모든 재산은 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소심하고 계산적인 사람인지 모릅니다.
큰 아들의 모습은 우리 기독교인들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보면 저의 모습이기도합니다.
4) 필립얀시의 책을 요약 정리한 내용입니다.
아버지는 술주정뱅입니다. 그의 자녀들은 10명이나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술먹고 내쫓았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다 아버지의 집에서 나왔지만 자신만은 아버지의 집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아버지가 술먹고 집에 들어오다가 구세군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밥을 주는데 그 대신에 예배를 드려야지 되기 때문에 예배를 참석하였습니다. 예배 시간에 성령이 아버지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술을 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자녀들에게 자신이 술을 끊게되었다고 하였지만 오직 8번째 딸, 데이지는 믿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를 내보낼 때에 아버지가 술을 먹고 한 행동들에 대하여 맹세하고 또 맹세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절대로 보지 않기 결심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집 근처에 살았지만 한번도 찾아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자녀들은 할아버지의 집에 가는 것을 눈 감아주었습니다. 그의 딸 마가렛이 자신의 아버지가 소천할 때에 그곳에 가서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딸 데이지가 온줄 알고 있지만 사실은 마가렛(데이지의 딸)이 그곳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의 행동이 자신의 자녀들에게까지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자녀들은 마게렛과 그리고 아들 마이클 인데 아들이 대마초를 하고 그리고 술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경찰관에 고발하고 교도소에서 죽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아들 마이클을 마약의 소굴에서 빠져나와 하와이에 가서 살게되었고 3명의 여성들과 살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오래 살것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또 이혼하고 또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1898년대 시카코의 가정의 한 이야기지만 그 삶속에서 용서가 없는 삶, 비 은혜로운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적으로 주는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시고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부모 형제 자녀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사명입니다. 큰 아들 처럼 죽었다가 다시 돌아온 동생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의 식구와 모든 이를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사랑만이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그리고 나 자신을 살린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사랑이 없으면 어찌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3. 탕자 (작은 아들)
1) 쾌락과 사치 방종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자신이 하고 싶으면 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으로 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탕자는 자신의 쾌락과 즐거움을 위하여서는 무엇이든지 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삶에 절제가 없고 방종하며 즐거움만 찾아다니는 사람입니다.
2) 결단하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잘못 살고 있다고 느끼면 언제든지 돌아겠다고 마음 먹으면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 가서 품꾼으로 일해야겠다고 생각하면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3) 겸손하고 자신의 분수를 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은 그래도 그 집의 아들이지만 자신의 잘못을 알고 겸손하게 아버지의 품꾼이 되겠다고 하면 자신을 낮춘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두 탕자의 이야기입니다. 큰 아들도 영적으로 탕자이고, 작은 아들은 육적인 탕자입니다. 그런데 모두 잃어버린 것들을 찾는 기쁨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시 예수님 쪽으로 돌아와 누가복음 15장 1절에서 세리와 창기들은 육적인 탕자지만 큰 아들 탕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바로 영적인 탕자입니다.
저희 가정은 5남매입니다. 그리고 제가 큰 아들입니다. 한번도 결혼하기 전까지 아버지의 집에서 나간 적이없습니다. 그런데 제 동생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아버지집을 떠났습니다. 지금 결혼하여 제수씨와 살고 있지만 신앙생활도 그리고 가정생활도 탕자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동생 정기가 수많은 물질을 벌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잘하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이제 영적으로 바르게 서기 만하면 되는 그러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 코로나19의 시대입니다. 지금은 어찌보면 우리가 돼지 우리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다 하나님께 돌아가 주님이 주시는 지혜와 주님이 주시는 백신을 맞고 건강하게 다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1) 가장 좋은 백신은 바로 파이자 백신입니다. (94%) 미제가 제일 좋다고 하였습니다. 이것 맞은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아프지 않고 부작용이 별로 없다고 하였습니다.
2) 아스트라제네가의 백신을 맞은 혈전으로 인하여 몇몇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뉴스를 접하게 될 때에 걱정을 하게됩니다. 혈전은 피딱지라고 합니다. 피가 응고되는 현상입니다. 심장에서 응고되거나 머리에서 응고되면 치명상을 당하게 된다고합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영국에서 만들었습니다. 약 60%정도 밖에 예방 효과가 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3) 러시아 백신 스푸트니크V 91.6%였다.
스푸트니크는 러시아로 Спутник →동반자라는 뜻입니다. 소비에트연방에서 인류 최초로 우주 궤도를 돌고 무사히 귀한한 우주선의 이름을 따서 백신을 만들었습니다. 러시아도 기초의학이 발전되어서 백신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자국에서 그리 많이 맞지 않는다고 합니다. 중국의 백신은 물백신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총 1천669명이 치료받다가 숨졌습니다. 80대 이상이 938명(56.2%)으로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이어 70대(463명), 60대(190명), 50대(55명), 40대(14명), 30대(7명), 20대(2명)순으로 죽었습니다. 나이가 많이 들수록 사망률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나이드신 분들은 백신이 맞는 것이 현명합니다. 가능하다면 화이자 백신을 맞는 것이 좋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백신은 영적인 백신인데 예수님의 영 성령임하도록 간구하는 백신입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을 떠나면 비참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돌아보면 다시 기쁨이 있습니다. 건강도 찾고, 물질도 찾고, 가정의 행복도 찾는 곳이 바로 예수님의 품입니다. 예수님을 떠난 삶은 돼지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벗어나는 길은 마음의 결심입니다. 다시 아버지 집으로 교회로 다시 나오게 될 때에 온 인류의 백신이신 예수님께서 코로나를 극복하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