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5년 6월

 

구원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세상의 구원과 기독교의 구원

불교에서의 구원은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하는 것을 구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스람의 구원은 심판하는 날 알라의 은총으로 구원 받는 것으로 봅니다.

세상적인 구원은 물에 빠진 사람이 구원함을 받고, 질병에서 회복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예수님을 통하여 죄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영생얻은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처음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상태의 회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구원의 잘못된 계념들

보통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구원은 죽어서 천국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가 죽기 직전에 입술로 고백하면 제일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천국가는 구원도 필요하지만 우리의 삶속에서 구원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저는 야구를 참 좋아합니다. 유일한 낙중에 하나가 프로야구 한화가 이기는 것을 즐겨보고 있습니다. 모든 투수들이 잘 던질 수 없습니다. 팀이 지려고 할 때에 나타나는 투수를 구원투수라고 합니다. (김서현 마무리 투수가 되어서 마운드에 올라올 때에 십자가를 그립니다)

 

  1. 구원의 글짜적인 해석

히브리어로 ‘구원’은 ‘예슈아’ (ישוע) 또는 ‘예샤’ (ישע)라고 표현하며,

물에서 건저낸 구원받았다는 모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함을 받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여호수아를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의미로 여호수아라고 쓰였습니다. 이것이 신약에 오면서 예수로 바뀌에 되었습니다. ‘예슈아’에서 유래된 헬라어는 ‘이에수스'(Ἰησοῦς)를 한국식으로 발음으로 ‘예수’이라고 표현하 수 있습니다.

 

  1. 현대적인 의미로 구원은

우리는 살아가면서 죄를 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부자이면서 돈 많은 젊은 청년 관원이 예수님에게 와서 구원을 얻을 것을 간구합니다. 그러나 청년는 돈이 많으므로 근심함으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는 돈많은 세리장이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 들어갈 때에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물질보다는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이라고 성경찾기

 

저는 친구중에 조0행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대전역 앞에서 치과의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여동생 조0숙이라는 여동생이 있는데 하루는 우리 어머니가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돈 많고, 능력이 있는 조0숙이가 네팔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치과의사로서 남편이 살고 있는데 선교사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생각했습니다 참 목사보다 더 좋은 생각을 가지고 사는 구나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 이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한국기독교 의료선교협회, 한국누가회선교부 – Mission department of CMF Korea. 한국누가회선교부, 한국기독의사회. 수많은 의사들이 선교사로서 헌신하겠다고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1. 구원과 죄의 문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모든 자유를 주셨지만 창조자와 피조물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한가지 규칙만 제정하였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선악을 모르고 살아가면 선과 악을 구분 없이 살아가면서 죄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가 들어와 선과 악을 알게됨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선과 악을 선택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 때는 선만 있었는데 사탄의 속임수에 빠져서 죄가 들어온 것입니다. 그리고 악도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악을 선택할 때에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죄를 짖게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되고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죄를 짖지 말아야하는 것일까? 그것은 마귀와 함께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죄가 들어오면서 우리들에게 들어오는 저주가 있었습니다.

 

창세기 3장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첫번째 저주는 땅이 저주를 받아서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땅의 저주는 가난의 저주입니다. 생활고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매일 직장에 나가고, 매일 생활 가운데 노동을 해야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저주는 죽음과 질병의 저주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살수 있었는데 질병으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질병의 종국은 바로 사망, 죽음인 것입니다.

 

  • 생활 가운데 저주의 해결입니다.

우리는 매일 예배를 드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주님과 동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죄를 지으므로 우리에게 저주가 다가옴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진 것입니다. 한 주간에 살면서 죄를 전혀 짖지 않고 살았다는 분이 없습니다. 한 주간의 죄를 성전에서 나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죄 사함의 방법으로 짐승을 통하여 죄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오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서 구원함 죄사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 근원이 죄 때문입니다. 여러분 되도록이면 죄를 짖지 않으려고 노력해야합니다. 죄를 지으면 빨리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회개해야합니다.

 

생활 가운데 구원은 바로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의하여 예배를 드릴 때에 그 구원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저는 수많은 간증들을 들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지금까지 살아오는 것이 매주일 이렇게 예배드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생활 가운데 물질의 문제, 자녀의 문제, 질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궁휼함이 많으신 주님께서 우리가 예배드릴 때에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해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학교, 성경대학의 강사였을 때에 어느 여집사님이 찬송가 407장을 부르다가 치료받았다는 간증도 들었습니다.

찬송가 407장의 가사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구주와 함께 나 살았도다. 영광의 그날에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 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그날에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4절: 내 몸의 약함을 아시는 주 못 고칠 질병이 아주 없네 괴로운 나릴 때 기쁠 때나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네

 

  1. 이스라엘의 구원의 개념 (구약)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이 선민이라고 생각하여 늘 하나님 앞에서 복의 근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복받은 민족인데 구약시대에서는 늘 이민족의 침략으로 고생하게 되었습니다. 이집트의 침략, 앗수르의 침약, 바벨론의 침약, 로마의 침략으로 부터 구원을 원하고 있습니다. 구원자 메시야를 원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메시야를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 가운데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구원자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분명히 그들의 눈에 볼 수 있도록 구원의 예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히브리서 8장 4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6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필리핀에서 마닐라 윤정열목사님과 함께 선물을 사게 되었습니다. 명품을 선물을 해주었습니다. 진짜를 사준줄 알고 있습니다. 자주 입고 다니는 것입니다. 상품코드가 없습니다. 짝퉁은 처다보지 않습니다. 가짜들이 많이 있습니다. 명품의 짝퉁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5대 제사는 모형과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오면서 진짜가 오신 예수님. 모형은 copy입니다. 복사본입니다. 아파트의 모델하우스를 보면서입니다. 우리 앞으로 들어갈 집에 대하여 모형과 그림자입니다. 진짜를 짖게 됩니다. 구약은 모형과 그림자입니다.

 

 

  1. 기독교의 구원

기독교에서는 구원을 salvation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에서 구원은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 즉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 구원이라고 합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통하여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함을 받는 것입니다.

 

1)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입니다. 죄 없는 분이 대신 죽으심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atonement라고 합니다. at one ment 입니다. “화해, 속죄”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하여 죄에 댓가를 지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화해: “at one ment”는 원래 “at one” 즉, “하나가 되다”라는 뜻에서 파생되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한 인간이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로 연결한 것을 의미하는 atonement입니다. atonements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속제함 즉 죄 씻음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계획으로 구원의 계획을 만들어주셨다고 하였을 때에 우리가 이에 대한 반응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러한 계획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믿음입니다. 구원의 인간의 공로고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 선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을 믿으면, 감사함으로 아멘으로 받으면 구원인 것입니다.

 

  1. 구원받은 성도들이 가져야할 자세

사도행전 3장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

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바라보와야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때에 나를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더 주목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실패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를 주목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에서 구역에서 생활 가운데 나를 주목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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