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에바브라는 빌레몬지역의 담임목사님입니다.
담임목사님에 대하여 이렇게 사도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여러분 이보다 더 아름다운 말이 어디있습니까? 제가 성산동 지역에 총무를 하고 있습니다. 서울지역총연합회 재무를 하고 있습니다. 서울서부지방회에 증경회장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하나도 필요없습니다. 교회가 없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직 성원순복음교회에서 하나님이 인정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는 이 단어가 가장 위대한 단어입니다.
에바브라는 항상 애서 기도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힘쓰고 애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한 것처럼 담임목사님으로 할 일은 성도님들을 위하여 날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의 이름을 한사람 한사람 불러가면서 기도합니다. 성도님의 자녀들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하여 수고를 하는데 보통 수고가 아니라 많이 많이 수고하는 것입니다. 저는 새벽기도회부터 수요, 철야, 주일예배 모든 예배에 설교합니다. 청소하고 그리고 성도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찰집사고, 제가 운전기사고, 제가 설교하는 주의 종으로 수고하지만 정말 기쁨니다.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의사누가입니다.
의사누가는 사도 바울을 항상 따라다닌 사람입니다. 의사 누가는 신분이 아주 귀한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1장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사도행전 1장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데오빌로를 각하라고 하였고 데오빌로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신분이 높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위하여 사도 바울 처럼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오직 사도 바울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사도 바울을 위하여 헌신한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남겼습니다. 성령의 감동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령의 감동함을 받지 않고 어떻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쓸수 있습니까? 지금도 가장 많이 읽는 말씀중에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데마는 사도 바울의 왼편에서 사도 바울을 도운 사역자입니다. 그는 빌레몬서를 쓸 때에는 사도 바울의 동역자입니다.
데마는 아리스다고, 마가와 함께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을 도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그는 사도 바울을 떠났을까요? 바로 세상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의 한 문서에 의하면 바울이 로마 셋방에 있었을 때에 바울의 오른편에는 누가가 왼편에는 데마가 있었다고 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10절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세상이라는 단어는
1) 지금 살고 있는 이곳입니다. 세상사람들입니다. 연애인들입니다. 향락입니다. 즐거움입니다. 음식들입니다. 행복입니다.
2) 세상은 세상의 사상과 세상은 영적인 것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세상안에는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있습니다. 이는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부터 왔다고 하였습니다.
데마는 데살로가로 떠났습니다. 제2의 수도입니다. 그곳에서는 향락과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순교할 때에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에 누가만 나와 함께 하고 있다고 디모데후서 4장 11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