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4장 1절 방언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5년 7월 12일 주일설교
고린도전서 14장
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나를 올라온 높이로 재지 말고 헤쳐 나온 깊이로 재어 주십시오.”- 이 말은 조지 워싱턴 카버 박사가 한 고백입니다.
카버는 1860년경에 태어나 1943년에 죽은 흑인입니다. 태어날 때는 자기가 언제 태어났는지조차 정확히 모르는 천한 흑인 노예이었습니다. 그러나 죽을 때는 미국에 사는 흑인이나 백인 모두가 존경하고 흠모하는 미국 제 1의 농학자이자 과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를 향해 사람들이 “땅콩 박사”라고 부르는 것을 기억하시지요? 그런 조지 워싱턴 카버가 그의 전기 속에서 털어놓는 말입니다. “나를 올라온 높이로 재지 말고 헤쳐 나온 깊이로 재어 주십시오.”
사람들은 늘 높이 오르는 데에만 관심합니다. 건물을 짓더라도 아주 높은 층으로 지으려고 합니다. 사회생활에서는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기를 기대합니다. 학교성적에서도 최고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가 소개하는 바벨탑 이야기 이래 사람들은 늘 이처럼 자기 이름을 높은 곳에 올리려고 무언가를 쌓기에 동분서주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깊이 없는 높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높이에 앞서 깊이가 있어야 합니다. 높이 자라는 나무일 수록 뿌리가 깊지 않습니까? 높은 층의 건물을 세우려면 먼저 깊이 파내려 가야 하지 않습니까? 높이를 재기 전에 먼저 깊이를 재어야 합니다.
길다고 해서 깊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 살았다고 해서 진리가 깊어지고, 신앙생활의 연조가 길다고 해서 신앙의 깊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냇물이 아무리 길어도, 강물이 아무리 길어도 바다보다 못한 것은 깊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시냇물은 흐르다가 마르기도 하고 얼어붙기도 합니다. 깊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이 강보다 훨씬 더 많고 풍성한 것은 바다가 아주 깊기 때문입니다. 넓어서라기보다는 깊어서 바다가 생명의 보고가 됩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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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3장 18절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성도들에게 영적인 깊이를 더하기 위하여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하겠습니다.
1. 서울서부지방회에서 목회자목사님들을 모시고 김동수교수님이 하는 세미나를 참석하였습니다. 방언에 대한 내용이였습니다. 우리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기에 교회에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합니다.
2. 방언은 과연 지금도 해야하는 가?
우리 평강이 고등학교에서는 침례교회였는데 방언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예전에 다녔던 교회는 교장선생님이 무디 가정의 목사님입니다. 아들도 목회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절대로 방언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미국침례교 교단인데 방언의 못하게 되었습니다. 올해에 침례교에서 선교사로 파송할 때에 방언을 하는 사람도 파송해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아들이 또 질문합니다. 아빠 왜 축도를 하고 왜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하는 것이지요. 예 어느 교회들은 미국의 영향을 받아서 축도와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하지 않는다고합니다. 성경에 없습니다. 성경에 없더라도 예배드릴 때에 그것이 성도들에 도움이 되고 신령한 것이면 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별히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은 이단과 구별되는 요소이기 때문에 그것을 하는 것입니다.
방언에 대하여 한국교회는 조금 특별합니다. 순복음이나 장로교단이나 침례교단도 모두 방언을 합니다. 그러나 아직 교단의 정책상 고산과 장신 총신의 경우 목사님들이 방언은 사도행전 시대에 끝이 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방언을 하지 않는다고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목사님들 사이에 사모님들은 많은 부분에서 방언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계적으로 신학적인 입장에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우에서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2007년 김우현 작가의 하늘의 언어라는 책을 통하여 방언에 대하여 조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2008년에 옥성호( 옥한흠목사님의 장남) 라는 분에 의하여 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 (부흥과 개혁사)의 책을 통하여 방언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박영돈, 느헤미야 연구원들 많은 방언에 대한 생각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방언의 부정적인 생각이나 방언에 대하여 긍정적인 생각과 신학적인 이론보다는 담임목사님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느냐 생각하지 않는냐에 따라서 교단과 교회에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장로교회에 총신, 장신, 고신아라고 하더라도 담임목사님이 그것을 강조하면 온 성도들은 방언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3. 방언의 반대입장에서
1) 방언이 그쳤다
고린도전서 13장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초대교회에서 모든 방언의 현상들이 완성되었고 이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2) 방언은 심리적으로 억압 받는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지 영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서광선은 방언하는 사람들이 주로 하류 계층임을 볼 때 결국 방언은 민죽의 하소연이며 민중의 하소연이며 민죽의 한을 말하는 소리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방언하는 분들이 여성들이 많아 가정에서 억압에서 생기는 속상함과 한을 푸는 기회 방언을 말하고 있습니다.
3) 마귀방언이라는데
사도바울은 천사의 방언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과연 마귀의 방언이 있는 것인가?
마귀 방언도 있습니다. 여러분 기독교인말고도 세상의 사람들이 귀신들이 마귀들이 방언을 하는 것입니다. 방언이라는 것은 영어로 tongue이라고 합니다. 마너 텅이라는 것은 모국어라는 것입니다. 즉 언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귀신의 언어가있습니다.
불교에서 보면 주문을 외운다고하는 것입니다. 스님들도 그 내용을 전혀 모르고 불경을 외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알라의 방송을 보았습니다. 무스림 사람들이 자신의 경전을 읽을때나 그들의 경전에 말할 때에 방언같은 것을 합니다.
어려분 귀신을 부를 때 무당이나 점정이들이 하는 방언이 있습니다. 마치 자장가처럼 들리는 주문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주신는 성령으로 방언을 말하기 때문에 그것이 마귀 방언인지 아니는지는 우리가 영분별로 할수 있는 것입니다.
4) 방언은 불신앙의 표현입니까?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글짜 그대로 말하면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것이므로 믿는 자들에게 필요없다는 생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이 가장 난해한 구절입니다. 그러나 문장 전체 고린도전서 12장부터 14장까지 읽으면서 전체의 문제를 살펴보면입니다. 방언을 사모하고 방언을 말하려고 하라고 말슴하고 잇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느 부분에서도 방언에 대하여 부정적은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 오면서 고린도교회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방언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없이 교회에 예배를 들리는데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것보다 예언하기를 힘쓰고, 공적인 장소에서는 말 다섯마디가 못 알아듣는 방언 밀만 마디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4. 방언를 하지 못하는 이유
1) 방언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방언을 하려고 하지 않고 방언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방언에 대한 좋은 영향과 좋은 기억이 없습니다. 특별히 이것이 진짜 하나님이 방언인지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만들어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생각이듭니다.
2) 방언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음
방언을 잘하는 사람들이 옆에서 기도하면 기가 죽고 어떻게 해야할지모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하면 방언못하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 들기 때문입니다.
5. 왜 우리는 방언을 하려고하는 것인가?
1)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영의 기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기도할 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하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기도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 성경은 우리 모든 사람들이 다 방언을 말하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6. 어떻게 하면 방언을 받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사람들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성령이 임하였기 때문에 성령의 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에 대한 잘못된 부정적인 태도를 바꿔 신앙생활하면 됩니다.
1) 방언을 사모해야합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절에
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2) 방언을 하려고해야합니다.
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7. 방언을 받으려면 어떻게 기도해야하는 가?
여러분 묵상으로 기도하면 방언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번 말씀하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통성기도해야합니다. 소리를 내야합니다. 하려고해야합니다. 둘째로 주님께 여러분의 혀를 맞기고 하려고하여야합니다. 그리고 방언을 마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결론입니다. 방언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편견과 아집을 버려야합니다. 성경이 방언을 말하고 있으므로 방언을 하도록 노력해야합니다. 바울은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전 14:39)라고 했다. 방언의 은사 자체를 멸시하고 평가절하하거나 방언하는 이들을 광신자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
방언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은사이므로 공중기도시간이나 교회에서 방해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에 힘을 써야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