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bible

갈라디아 2장 세옹지마

2014-08-09 11:20:06


갈라디아 2장 11절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4년 8월

갈라디아 2장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한자어를 그대로 해석하면 새옹의 말리란 뜻으로 세옹지마라는 한자어가 있습니다. 중국 회남자의 인간훈에 나오는 말입니다.

새옹은 말을 잘 길렀습니다. 말이 어느날 홀연히 국경을 넘어 오랑캐땅으로 도망가버렸습니다. 이것을 안 동네 사람들이 그가 크게 상심하리라고 생각하며 위로하였습니다.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그러나 새옹은 조금도 슬픈 기색을 보이지 않고 태연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이지 않았다. 그리곤 태연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누가 압니까?

“지금의 화가 내일의 복이 될 수도 있는 것이요. 지금의 슬픔이 어찌 곧 기쁨이라 말할 수 있지 않으리오?” (此何遽不爲福乎!). 수개월이 흘렀습니다. 새옹의 말대로 북방 오랑캐 지역에서 일어버린 말과 아주 훌륭한 준마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잔치 분위기였습니다. 그 때 그 노인 누가 압니까? “오늘의 복이 내일의 화가 될 수도 있는 것, 지금의 기쁨이 어찌 곧 슬픔이라 말할 수 있지 않으리오?” (此何遽不能爲禍骨骨乎!)

그 새옹의 집에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말을 잘 길렀기 때문에 그 외아들은 말타기를 좋아했습니다. 말을 타다가 그만 낙마하여 비골이 크게 부러져서 다리 병신이 되었습니다. 온 동네가 상가집분위기였습니다. 그때 세옹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누가 압니까? (此何遽不爲福乎!)

그리고 일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변경의 오랑캐가 대거 침입해들어왔습니다.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모든 동내 장정들은 징발되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중 열중 아홉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새옹의 외아들은 다리가 병신이기 때문에 징발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복이 화가 되고 또 화가 복이 되는 것은, 그 변화가 불측하여 그 끝을 알 수가 없고, 그 이치가 깊고 깊어 이루다 헤아릴 수가 없다(故福之爲禍, 禍之爲福, 化不可極, 深不可測也。).

우리 사모가 이렇게 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자신의 교장선생님의 말씀입니다. 어느 중학교에서 있었던 일이고 자신의 동기동창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여선생님은 선생님 역할을 참 잘 수행하였습니다. 그런데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하여 학교를 그만두고 크게 학원을 차렸습니다. 학교에서 잘 가르쳤고 그리고 퇴직하였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습니다. 빌딩전체를 다 쓸 정도로 수많은 돈을 벌었다고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남편도 그 사업에 같이 뛰어들어서 모든 경영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학원은 혼자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학원에 선생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학원선생의 여선생과 눈이 맞아 남편이 바람을 피우게 되었고 그리고 그 여선생 함께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동기는 이혼소송을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혼소송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더욱더 놀라운 것입니다. 가정이 엉망이 되니 사업도 깨지게 되고 지금은 학교에서 교사가 아니라 기간제 (期間制) 교사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 평강이와 모든 성도들이 언제나 인생이 잘될 때나 그리고 어려움을 당하게 될 때에 늘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남을 비판하지 않고 살기 위하는 마음으로 살기 위하여 설교하고자합니다.

전도서 1장 9절 “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

하나님이 온 세상에서 언제나 음과 양을 주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주셨습니다. 겨울과 여름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언제나 햇빛만 비치지 않고 비도 오는 날도 있고 그리고 눈이 오는 날도 있습니다. 즉 인생에 슬픈 날도 있고 그리고 즐거운 날도 있다는 뜻입니다. 즉 세옹지마의 인생입니다. 그래서 우는 늘 겸손하게 살아가야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때에 언제나 하나님은 한면만 주시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오는 사람도 마찮가지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 모두에게 그러한 일들을 주셨습니다. 박근혜대통령 ( 칼을 맞는 적이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현해탄에서 죽을 뻔한 삶도 있었습니다. 제벌은 편할 할 것이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 제벌에도 고통과 인고의 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최고의 부자 이건희 회장 언제나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았으나 형제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그리고 건강상의 어려움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든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어려움과 행복을 번갈아가면 격게 되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더 려움이 올수 있습니다. 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말씀을 중심으로 함께 살펴보도록하겠습니다.

1. 세옹지마의 삶속에서

– 겸손하게 광야의 길을 걷는 삶

신명기 8장 1.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참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어려분들을 미워서 싫어서 어려운 길을 주시는 길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서자처럼 때리고 아품을 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 대로 살고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기 위하여 세옹지마의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좋은학교로 하나님이 입학하게 하셨습니다. 자신의 실력으로 입학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으로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옹지마의 삶을 꼭 명심해야합니다.

둘째 동생의 삶을 통하여서 그것이 영력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동생이 고만하고 물질을 자랑하고 그리고 특별히 도박을하는 경우에는 꼭 하나님이 그 몸을 치는 경우를 보게됩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회개하면 얼마동안 가정중심 하나님중심으로 살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간은 늘 불행해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그래서 겸손하고 하나님앞에서 낮아져야하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참으로 요망한 심적인 동물입니다. 사람이 편하고 능력이 있으면 하나님이 필요없어지고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든지 하려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이 여러번 겹치고 여러번 깨닫게 되면 이렇게 살면 안되겠구나 하여 매일 새벽기도하게 되고 그리고 하나님앞에서 철저히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비밀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은 우리 평강이는 그것을 잘 모릅니다. 그것을 잘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고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교만하면 망하게 되고 타락하면 죄를 짖게 되면 분명히 죄의 댓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공부하는 기간에는 공부를 사업을 하는 기간에는 사업으로 잘하면서 신앙생활 잘하는 것이 복을 받는 길입니다. 이것이 늘 겸손하게 살아가는 길입니다.

2. 세옹지마의 삶속에서

– 사도 바울과 베드로의 삶

갈라디아 2장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사도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한 내용입니다.

책망하는 내용이 어러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안디옥에 이르렀습니다. 그 지역은 이방인의 지역입니다. 그 지역에서는 대부분이 이방인들이고 그리고 이방인의 계종자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한 형제가 되어서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통과 율례가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나라에서도 그들만의 율례와 전통이 있습니다. 이방인들을 개취급하고 이방인들과 식사를 같이 하면 안되는 전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어도 그 생활속에서는 그러한 전통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안디옥지역에 예루살렘교회에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안 베드로가 몰레 그 자리를 피한 것을 보고 사도바울은 침소봉대한 내용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4.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사도 바울은 왜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고 하면서 게바를 은근히 비꼬는 말을 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위 사건과 그리고 아내의 사건을 통하여 사도 바울은 사도 베드로에게 약간의 컴프렉스가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공개적으로 성경에까지 그것을 써가면서 사도 베드로를 비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찾아가거나 아니면 그냥 넘어가는 것이 좋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 이러한 행동들을 할까?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한 행동이라고 생각이듭니다. 남이 잘못된 점을 지적함으로 자신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마치 선거판에서 행하는 일들입니다. 예를 들어 여당이 잘못하였습니다. 세월호를 통하여 잘못된 점을 지적합니다. 그러니 야당이 이들을 보는 것입니다. 선거에서 나왔을 때에 상대편의 잘못된 점을 지적합니다. 그 사람의 비리와 그 사람의 허물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더 많은 표를 얻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네가티브선거라고 합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이러한 현상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것이 죄요 잘못된 점입니다. 왜냐하면 선거에서 한두번은 그러한 경향으로 이길수 있지만 늘 이기지는 못합니다. 항상 남의 험담만을 이야기하면 결말에서는 항상 남의 잘못보다는 자신의 삶과 정치철학으로 승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사도바울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예수님의 수제자입니다.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사항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제자들만 예수님이 임명한 사도들만 사도로서 인정했습니다. 요즘 내적치유와 성령운동하는 분들중에 신사도운동을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입장을 들어보면 자신들이 사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많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인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는 오직 예수님의 제자들만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도 성경의 오류가 없기 때문에 지금 모든 분들이 사도 바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오직 바나바만 믿었습니다. 그래서 안디옥에서 목회할때에 사도 바울을 불러 같이 목회를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초대교회에 성도들과 사도들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자 자신의 간증 사도행전에서 나타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자신이 사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간증입니다. 저희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있지만 초대교회 당시에는 오직 바나바밖에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점점 사도 바울의 전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자 누가가 그리고 디모데가 그리고 이방인교회 교인들이 사도바울의 사도성을 믿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러지만 결론적으로 로마 카토릭에서 일대 교황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문제에서 사도 바울이 아니라 사도 베드로라고 생각하여 지금도 베드로 성당에서 카토릭의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교황을 뽑고, 그곳에서 미사를 드리고 세계 모든 천주교의 본산지가 바로 로마에 있는 베드로 성당입니다. 바울성당이 아니라 베드로 성당입니다. 제사 바울성당을 구글로 검색해보니 초라하기가 그지없습니다. 오직 벽 앞쪽만 남아있는 마코오의 성 바울성당 밖에 검색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3. 세옹지마를 통하여 우리는 남을 괴롭히는 삶보다는 남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관용)

이번 윤일병의 사건을 통하여 모든 국민들이 놀래고 있습니다. 군에 있는 병장이 온세상의 지배인 것처럼 살아가지만 그러나 그것도 세옹지망입니다. 당시에 자신이 윤일병을 괴롭힐 때에는 세상에 최고의 정점이 자신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윤일병이 와서 5분마다 용서해달라고 해도 무차별하게 구타를 하였습니다. 물론 심폐소생으로 갈빗대가 부러졌어도 갈빗대의 부럼짐과 맞아죽는 흔적들과 멍자국을 볼때에 얼마나 부모는 마음이 찢어지는 아품이 들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군생활 할때에도 참으로 많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고참이 있습니다. 그 이름을을 들을 때나 다시 군에 가는 꿈을 종종 제대하고 5년까지는 꾼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군생활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없지만 10년전까지만 해도 군에대한 공포 매맞음 그리고 가혹행위 그리고 밤에 잘때의 공포들 성적인 요구, 종교에 대한 집단 구타를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처지게 느겨지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박근혜정부를 통하여 빨리 부조리를 고치라는 하나님의 깨달음의 사건들입니다. 병영문화도 개선되어야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군이 어디에서서 아랍군대를 이깁니다. 그들이 때려서 그렇게 잘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군기가 아니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병장이 아무리 길어도 최고의 고참을 6개월할 수 있을까? 그러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즘은 24개월이고 군복무도 많이 줄었다. 세옹지마를 알지못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 좀더 남을 대접했다면 이렇한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도 쫄병 때 그렇게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들도 당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실패 그것도 세옹지마입니다. 성공으로 가는 길중에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남들이 실수할때에 너그럽게 생각하고 남들이 잘못했을 때에 더 포용력을 갖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누가복음 6장 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우리가 명심해야할 것은 모든 사람들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인간이고 완전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 사도 인간이 부족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이 부인한 사람입니다. 그는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을 용납해야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역시 베드로의 잘못을 관용으로 볼수 있어야합니다.

여러분이 존경하는 목사님이 계십니까? 저는 조용기 목사님을 존경하여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사모님에게 이러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교감선생님과 이야기하는데 교감선생님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유병언은 10만명, 조용기 목사님은 80만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유병언과 조용기 목사님과 무슨차이가 있다는 것입니까? 세상의 사람들은 그 범죄가 그 범죄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모든 인간은 다 잘못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담부터 아브라함 다윗 베드로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앞에서 피조물이고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이리가 명심해야할 것은 인간 목회자를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운 대리자로서 목사님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실수까지 존경하는 마음 너그러운 마음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남을 심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앞에서 심판을 받을 사람들이고 그러한 모든 것이 하나님앞에서 판결되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실수를 통하여 내가 더 위대하는 자기 과신의 마음까지 갖지 않는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 참고 자료: 오직 한분뿐인 스승 예수 중에서 흔들리며 피는 꽃 (한승진 목사님 설교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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